ADVERTISEMENT

<대통령의비자금>5.끝 어떻게 관리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93년8월12일이면 바로 2년전이다.금융실명제가 전격 발표된날이다.이를 전후해 사채시장에서는 「횡재」한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번졌다.만기를 2~3개월 앞둔 양도성예금증서가 거의 반값 선에서 거래됐다는 것이다.
즉각 전주(錢主)가 정치인일 것이라는 추측이 뒤따랐다.여기에「증서가 1억원짜리로 1천억원대」라는 규모내용도 덧붙여졌다.자연「전직대통령의 돈」이라는 說로 번졌다.소문이 꼬리를 물자 정부는『그런 일이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의 파동은 어느 한 사람의 특정한 습관을 연상시켰다.바로전두환(全斗煥)前대통령의 자금관리 행태였다.全씨가 재직때 수십개의 단기성 예금통장으로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했던데서 오는 추측이었다.全씨는 장기채권이나 증권에는 투자하지 않았다고 한다.또한 全씨는 아랫사람에게 입.출금 정도의 심부름을 시켰을 뿐통장 자체는 자신이 직접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주고 받는 일도자신이 직접 했다는 것이다.
노태우(盧泰愚)前대통령은 全씨와는 스타일이 달랐다.그는 자신이 직접 받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매우 꺼렸다.직접 받을 경우에도 조심했다.「자발적으로 와서 놓고 가길래 받는」식이었다.
그래서『한번도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물론 그것으로 충분했을리 없다.그래서 대리인이 동원됐다.한때는 측근 박철언(朴哲彦)前의원이 맡았다고 한다.13대 대선에서월계수회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부여됐던 모금과 집행의 권한이 이어진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그러나 盧씨의 취임부 터 퇴임까지 일관되게 간여했던 사람은 따로 있다.바로 이원조(李源祚)前의원이다. 李씨는 당초에는 全씨쪽 사람이었다.그러다가 권력의 이동과정에서 盧씨에게로 돌아섰다.全씨의 말에 따르면 李씨가 全씨에게『13대 대선자금을 거두겠다』고 자청한 일이 있다고 한다.全씨는 이를 허용했다.물론 李씨가 역할을 자청한 데는 盧 씨와의교감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李씨는 盧씨를 당선시키는데 성공한 뒤 은행감독원장으로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했다.「금융가의 황제」라는 별명은 그때 붙었다.李씨는 재벌의 자금줄을 쥔 은행에 대한 감독권과 인사권을 활용했다.그런 과정에서 盧씨와 가장 많은 비밀을 공유 하게 됐다.
이같은 관계는 후에도 李씨의 가장 중요한 보호막이 됐다.盧씨는 5共청산때 李씨의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야당에『李씨만은 빼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盧씨의 자금관리 스타일은 베일에 가려 있다.아마 재임 당시 5共청산을 보고 이때부터 철저한 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盧씨는 수서사건.동화은행비자금사건.율곡비리.슬롯머신사건.한양비자금사건등 굵직한 정치자금 관련 의혹사건들을 피해나갈 수 있었다. 이들 전직 대통령들이 거액을 남겼다면 목적은 분명하다. 결국 적극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의 유지고 소극적으로는 신변의 안전보장용이었을 것이다.
全씨는 퇴임후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을 맡으려고 했다.당시에는 이를「상왕부(上王府)」라고들 불렀다.盧씨는 내각제에 미련을버리지 못했다.
이들이 이런 목적에서 잔여자금을 남겼다면 그돈을 어디에 두고관리하고 있을 지도 점쳐볼 수 있다.아마 비밀이 보장되고 단기성인 동시에 현금으로 바꾸기 가장 쉬운 형태일 것이다.정가에는묶여있는 정치자금이 새정부 등장을 느긋하게 기 다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金敎俊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