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시대 47.제2회 應昌期배 결승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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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8명의 한국선수단(선수는 서봉수 한 명 뿐이지만)이 싱가포르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중국의 마녀」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의 모습이 맨먼저 눈에 띄었다.그녀는 「환영 한국」이라고 한글로 쓴 종이를 펼쳐들고 잇몸까지 드러낸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제2회 잉창치(應昌期)배를 치르면서 그녀는 단숨에 친한파가됐다.전투형의 芮9단은 악전고투하면서 승리를 엮어내는 한국바둑에 매료됐다고 했다.일본에서 2년이나 산 芮9단은 또 이렇게 말했다.『한국사람은 정이 많고 솔직해요.』 이틀후인 5월20일시내 중심가의 마리나만다린호텔에서 열린 應씨배 결승 제3국에서서봉수9단은 불과 1백19수만에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9단을제압했다.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바둑계의 전설」 우칭위안(吳淸源)9단의 카랑카랑한 목 소리가 시종 검토실을 울렸다.오타케가비틀거릴 때마다 그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여지없이 칼날을 내려쳤다.『이건 바둑도 아니야.』 14세때 일본에 건너가 60여년을 그곳에서 살아온 吳9단이다.中日전쟁때 그는 일본바둑의 상징인 최후의 세습제 혼인보(本因坊) 슈사이(秀哉)명인을 바둑판에서 궁지에 몰아넣었고 이 바둑이 매일 몇수씩 호외로 보도될 때마다 그의 거처엔 돌멩이가 날아들곤 했다.
슈사이의 맥을 기타니(木谷實)가 이었고 吳9단의 친구요,라이벌인 기타니의 대제자가 바로 오타케.吳9단은 일본바둑의 법통을이은 오타케의 한수 한수에 몹시 준엄했다.80세의 대승부사 吳9단의 가슴엔 아직도 사랑과 미움이 절절이 녹아 흐르고 있었다. 徐9단이 승리해 2대1로 앞서자 교민들은 잔치분위기가 됐다.식성이 까다로운 徐9단을 위해 김치를 들고 특급호텔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던 싱가포르기우회의 손태(기업은행)총무는 감격한 나머지 김치냄비를 그만 잃어버렸다.
그러나 슬쩍 밀기만해도 넘어갈 것같던 오타케는 이틀후의 제4국에서 의연한 자세로 나왔다.오히려 徐9단쪽에서 비몽사몽이 돼마치 동네바둑처럼 뚝딱뚝딱 두더니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불계패.왜 그렇게 빨리 뒀냐고 묻자 徐9단의 대답이 걸작이었다.『초읽기에 몰릴까봐 너무 겁났어.』 우승이 임박하자 徐9단은 거의정신을 잃어버렸다.아무리 붙들어매려 애써도 손이 저절로 나가 판위에 돌을 놓고 있었다.제3국의 오타케처럼 완착.실착이 거듭됐고 그때마다 검토하던 吳9단의 흰 눈썹이 소리없이 일그러졌다. 드디어 2대2.결승전은 이틀후.
徐9단에게 가장 긴 이틀이 시작됐다.그의 가슴은 지진을 만난초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徐9단이 평상심을 잃었다는 건 누구나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그는 싱가포르의 거리를 걷다 혼잣말로 불쑥 소리치곤했다.『큰일났다!』 동행한 徐9단의 부인 이영화씨가 왜 그래요 하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좀 해봐요 하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악몽같은 밤이 가고 다시 해가 떠올랐다.오타케는 유람선을 타며 여유있게 관광에 나섰고 徐9단은 공원으로 갔다.돌이켜볼때 이 하루가 어떤 의미에서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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