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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25. 대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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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행렬.

청천벽력이었다. 북이 전면전을 일으켰다. 서울 시민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정부는 방송을 통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강다리가 폭파되고 어느새 인민군은 서울에 쫙 깔렸다.

전광석화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란가는 남부여대(男負女戴)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나는 피란을 못 갔다. 아니 일부러 남았다. 가까이 가지지 않던 그 세상은 어떤 곳인가. 몸으로 겪어봐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거리에 나가보니 희한하다. 마차를 세워놓고 이야기 하는 인민복 차림의 북쪽 사람이 근사하게 보였다. "태백산맥에 눈 내린다…." 군가를 부르며 지나가는 인민군 대열도 멋있어 보인다. 방송국을 점령한 그들은 쾅쾅 큰 소리로 외쳤다. "남조선 인민들이여, 궐기하라 궐기하라!"

조심스럽게 방송국에 나갔더니 낯익은 몇몇 얼굴들이 잘 왔다며 협조하라고 했다. 의용군에 나가라는 집회가 있었다. 의용군? 나는 슬슬 꽁무니를 뺐다. 노정팔(盧正八)씨가 이미 나갔다고 했다. 매일 저녁 그 모임이 열렸다. 나는 그 때마다 피했다.

안국동 윤보선씨댁에 여성동맹이라는 것이 들어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한국은행 건너편 어떤 건물에서 문학가동맹 결성식이 있었다. 낯익은 많은 얼굴들과 만났다.

하루는 방송국 복도에서 이인수(李仁秀) 선생을 만났다. 그는 영어방송을 하고 있었다. 미군을 향하여 물러가라는 선언문 낭독이었다. 예과 때부터 '냄새'가 이상하던 분이다. "韓군,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이런 일 하는거…."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그도 찜찜한 모양이었다. 방송 내용을 사전 검열하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북에서 온 사람을 찾아갔다.

"여태까지 공부를 못 했습니다. 내 자신을 적응시켜보고 싶습니다. 뭘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습니까?"

그는 나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볼셰비키당사를 읽으시오."

몇 페이지 읽었는데, 어느 날 저녁 인민위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적십자병원 앞에 있는 창고 같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의용군이다. 농민들이 끌려와 있었다. 우리는 어디론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신세계백화점 앞을 지날 때다. 행렬에서 대여섯 발짝 뒤떨어져 가는 나에게 인솔자가 물었다.

"동무는 가족이 어떻게 되시오?"

"어머니하고 단 둘입니다."

"독신이오?"

"그렇습니다."

"그래요…" 하고 그는 앞으로 갔다. 무슨 뜻일까? 동정하는 걸까. 대열이 신일국민학교 가까이 왔다. 저쪽에서 오는 대열이 먼저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아까 그 인솔자에게 물었다.

"몹시 배가 고픈데 참외 하나 사먹어도 될까요?"

"그러시오."

나는 골목 입구의 참외가게 앞에서 흥정하는 척 하면서 뒤돌아보았다. 나를 안 보고 있다. 옆의 가게로 가서 다시 돌아보니 역시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걸음아 나 살려라! 골목 안으로 뺑소니를 쳤다. 땀이 비오듯 했다. 종삼 골목으로 들어가 삼청동으로 향했다. 통행금지 시간인 오후 8시가 지났다. 아주 조마조마했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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