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완벽한 피임약의 탄생은 불가능한 것일까. 최근 인간유전자를 속속들이 밝혀내는 지노믹스와 단백질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프로테오믹스 기법의 발전으로 차세대 피임약의 개발이 한창이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 3월호는 "미국 의약연구소(IOM) 등 세계 유명 연구소가 새로운 개념의 피임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며 "앞으로 5~10년 내 피임약에 혁명이 몰려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IOM은 정자와 난자에서만 특이하게 나오는 유전자와 단백질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정자와 난자를 싸고 있는 세포막 단백질이 목표이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져 수정란을 이룰 때 이들 세포막의 단백질 간 특이한 반응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자의 A라는 단백질과 난자의 B라는 단백질이 초기 반응을 일으켜 수정에 성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인위적으로 B단백질에만 특이하게 붙을 수 있는 A단백질 유사체를 체내에 주입해 정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원리다.
수정란의 착상과정도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 메인주 잭슨연구소의 존 에피그 박사는 "질량분석기와 각종 첨단기기를 이용해 수정란의 착상에 관여하는 난자의 단백질 수개를 분리했다"며 "이 단백질의 작용을 방해할 수 있는 약물이 개발되면 착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과기원 조정희(생명과학과) 교수는 "정자의 운동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이 활동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면 남성이 먹는 피임약의 개발도 가능하다"며 "정자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단백질의 수가 난자의 특이 단백질 수에 비해 훨씬 많아 정자를 목표로 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버지니아대의 존 헤어 교수는 최근 정자의 양을 간편하게 점검할 수 있는 '스펌 체크'를 개발했다. 정자의 세포막에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단백질을 체크하는 것이다. 헤어 교수는 이들 단백질에만 들러붙는 인공항체를 만들어 원숭이 실험을 진행 중이다. 항체가 정자의 특이 단백질에 붙으면 난자를 인식할 수 없게 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스마트 물질'에 대한 연구도 한창이다. 상온에서는 액체 상태로 존재하지만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체내에서는 끈끈한 젤 상태로 변하는 물질이 후보다. 이를 응용하면 나팔관으로 이동한 뒤 통로를 막아 정자의 침입을 막게 된다. 물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액체로 변해 완전히 제거될 수 있어야 한다.
심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