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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농어촌의 버팀목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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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엊그제 농촌 마을의 한 초등학교가 시끌벅적했다. 100돌 잔치였다. 주민들과 타향에서 달려온 동문, 학부모, 재학생 등 300여 명이 모였다. 100돌 기념탑 제막식과 학생들의 장기자랑, 동문 체육대회가 이어져 모처럼 학교에 생기가 돌았다.

학교 이름은 1908년 설립된 인천 강화도의 양도초등학교. 전국 5700여 초등학교 중 100년이 넘은 곳은 수십여 개에 불과하다니 잔치를 벌일 만도 했다. 내가 다니던 1970년대 초에는 전교생이 700명이 넘었다. 한 학년이 120명이나 됐다. 아이들은 학교까지 30분~1시간 이상을 걸어 다녔지만 친구와 형·아우가 있어 힘든 줄을 몰랐다. 깜부기를 따먹고, 물수제비 뜨기 장난을 하고, 개천에서 멱을 감는 일이 즐거워서였다.

2008년 4월 모교의 전교생은 34명에 불과했다. 특히 1학년은 세 명, 2학년은 네 명이었다. 올 2월 전국적으로 졸업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초등학교가 20여 곳, 3월에 ‘나홀로 신입생’을 받은 학교가 130여 곳이라니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더 걱정이다. 6학년 8명이 졸업하지만 신입생은 많아야 두 명이라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4학년 한 명이 전학을 오자 “경축, 전학을 환영합니다”라고 적은 현수막까지 붙였단다. 그만큼 학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절실한 것이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 어르신은 “생산공장(젊은 부부)이 없으니 제품(아이)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혀를 찼다.

교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이다. 교사 1인당 학생수가 5명인 장점을 살려 수준별 개인학습을 하고, 방과후에는 컴퓨터·피아노·과학 특기를 살려주고 있다. 김낙진 교장은 “학생이 한 명이 되더라도 절대 학교를 포기할 수 없다”며 “학교는 주민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모교의 어제 오늘을 소개한 것은 전국 농어촌 학교의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대부분 노인들만 사는 농어촌은 학교도 황폐화되고 있다. 80년부터 지금까지 문을 닫은 초등학교가 전국에서 2423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교생이 60명 미만인 곳은 올해도 통폐합을 유도하고 있다. 500여 곳이나 된다.

학교 운영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폐교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학교가 없으면 젊은 부부들이 농어촌에 살 수 없고, 농어촌 공동화는 더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훌륭한 교사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최북단 섬인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아래 소청도 소청분교의 라지창(34) 교사도 그중 한 분이다. 소청분교는 학생이 없어 4년간 문을 닫았다가 지난달 다시 열었다. 1학년 3명과 2, 3학년 한 명씩이 입학한 것이다. 주민들은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자원근무 중인 라 교사는 “섬에 갇혀 지내야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강원도 평창군 면온초등학교 교사들도 2003년 입학생이 한 명도 없던 학교를 살려냈다. 비결은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이었다. 민족사관고, 휘닉스파크,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등과 결연해 사람과 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민사고 학생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방과후에 찾아와 영어·과학·가야금을 가르치고, 평창수련원은 수영장과 공연장을 내주고, 휘닉스파크는 골프레슨을 지원하는 식이다. 교육이 알차니 5년 전 20명이던 학생이 올해는 63명으로 늘어났다. 이 중 49명은 타지에서 소문을 듣고 전학 온 아이들이다.

농어촌 학교는 주민들의 버팀목이자 지역의 상징이다. 온 가족, 온 동네 사람들이 배웠고 배울 수 있는 둥지다. 학교도 살리고 지역에도 희망을 주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 교사들은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주민들의 평생학습터로 학교를 개방해야 한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다. 학교가 살아야 농어촌이 산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