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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가 가장 우승하고픈 대회, 마스터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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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25면

11일(한국시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1라운드 경기. 타이거 우즈가 16번 홀 그린 앞에서 잠시 상념에 잠겨 있다. 최경주 선수는 파3(170 야드)인 이 홀에서 티샷한 볼을 물에 빠뜨렸다. 오거스타 AP=연합뉴스

안개 자욱한 래의 개울을 건너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아멘 코너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는 호건의 다리는 골퍼에겐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성스럽다. 디봇 자국 하나 없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융단 같은 페어웨이와 유리판 같은 그린은 골퍼의 이데아다.

마스터스는 신비에 싸여 있다. 라이벌인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 US오픈과는 전혀 반대의 설렘이다. 디 오픈과 US오픈은 말 그대로 열려 있다. 지역 예선을 열고 이 관문을 통과한다면 프로 선수든 아마추어든 누구나 참가가 가능하다. 동등한 조건에서 경기하며 진정한 챔피언을 가리는 골프라는 스포츠의 가장 훌륭한 대회다.

반대로 마스터스엔 아무나 나갈 수 없다. 1934년 처음 만들었을 때 대회 이름은 오거스타 내셔널 인비테이셔널(초청) 토너먼트였다. 이름은 마스터스 토너먼트로 바뀌었지만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역대 우승자와 세계랭킹 50위 이내, PGA 투어 우승자, 주요 아마추어 대회 우승자들만 초청받는다. 초청 자격이 명문화되어 있어 실제 오픈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초청은 초청이다. 또한 숫자는 한정됐다.

디 오픈이나 US 오픈의 참가자가 156명인 데 비해 마스터스는 90명 정도다. 마스터스는 가장 참가하기 어려운 대회이고 그래서 최고 프로 골퍼들에게도 마스터스 초청장을 받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예다.

우승자에 대한 예우도 끔찍할 정도다. 그린 재킷을 입고, 챔피언스 디너에 참가하며 평생 출전권이 보장되는 등 챔피언 클럽의 화려한 모습은 잘 알려져 있지만 생각보다 더 귀족적인 것 같다. 최경주는 “스케줄부터 식사 모임까지 (우승자와 비우승자의 차별이) 우습지도 않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최경주는 가장 우승하고 싶은 대회를 마스터스로 꼽는지도 모른다. 설립부터 대회는 고귀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후 홀연히 골프에서 은퇴한 바비 존스가 이 대회를 만들었다. 골프의 성인 존스의 영혼이 깃든 대회다.

다른 메이저 대회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신화는 더 풍부하다. 2회 대회인 35년 진 사라센이 마지막 라운드 15번 홀에서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면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68년 4라운드에서 로베르토 드 비센조는 17번 홀에서 3타를 치고 4타로 잘못 적어내 연장전에 가지 못했다. 86년 46세의 한물간 골퍼 잭 니클로스는 이 대회 우승으로 중년 골퍼들의 가슴속에서 용기와 희망, 눈물을 끌어냈다.

96년 그레그 노먼은 최종 라운드에서 닉 팔도에게 6타를 앞서다 5타 차로 져 메이저 대회 사상 최악의 역전패 기록을 남겼다. 타이거 우즈가 97년 12타 차로 우승하며 골프 황제의 등극을 포효한 곳도 이곳이다. 우즈는 2001년 그린 재킷을 입으면서 타이거 슬램을 완성했다. 메이저 무관의 제왕 필 미켈슨이 첫 우승을 하며 감격의 점프를 한 곳도 오거스타 그린이다.

역대 챔피언은 화려하다. 오거스타는 니클로스의 놀이터(6회 우승)였으며 우즈(4회)와 아널드 파머(4회)도 유달리 강했다. 해리슨 포드를 닮은 영국 신사 팔도와 골프의 베이브 루스 샘 스니드, 게리 플레이어가 3회씩 우승했다. 골프의 전설인 벤 호건과 바이런 넬슨은 챔피언 명부에 두 차례 이름을 새겨놨다. 잘생긴 미켈슨과 프레드 커플스도 챔피언스 클럽 회원이다.

검증되고,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들이 마스터스에서 유독 강한 이유를 기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진입 장벽이 높은 폐쇄적인 조직이라면 그 안에서의 경쟁은 심하지 않다. 156명이 경쟁하는 디 오픈과 US오픈에 비해 90여 명이 나가는 마스터스는 산술적으로 개별 선수의 우승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마스터스는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우승자의 평생 출전권이 보장되는데 고령의 역대 챔피언 등은 사실상 참가에 의미를 두는 선수들이다. 실제 우승 경쟁을 하는 선수는 70명 정도에 불과하다.

또 마스터스는 대회장 선정도 폐쇄적이다. 매년 골프장을 옮기는 디 오픈·US오픈·PGA 챔피언십과 달리 마스터스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만 열린다. 그린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처음 나오는 무명의 뜨내기 선수들이 우즈 같은 단골 고객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 스타들을 위한 귀족 대회가 마스터스다.

세계 골프 라이터들은 전통이 더 깊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골프의 정신을 잘 구현한 디 오픈과 US오픈을 더 위대한 대회로 친다. 골프를 관장하는 R&A와 USGA의 공식 대회이며 내셔널 타이틀까지 걸려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마스터스는 반대로 권위를 얻었다. 대회를 여는 오거스타 골프장은 여성 회원을 받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가 “친목단체의 일에 상관하지 마라”는 투로 반박한 바 있다. 사사로운 단체의 폐쇄적이며 사적인 대회라는 것을 그들이 공표한 것이다.

이렇게 닫아둠으로써 마스터스는 신비함과 화려함을 얻었다.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 선수나 대중이 오히려 마스터스를 더 명품으로 여기는 아이러니가 생겼기 때문이다.

노란색 미국 지도에 꽂힌 마스터스의 깃발이 골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것은 확실하다. 마스터스는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티켓 값도 비싸고 중계권료도 비싸다. ‘하나를 해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는 골프다이제스트의 온라인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마스터스 입장 배지 2개를 1위로 꼽았다. 인근 시립 코스의 무료 라운드 20회(4.1%)에 비해 9배 높은 수치(36.6%)였다.

14일이면 다시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나온다. 마스터스에 대한 대중의 선망도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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