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쉿~” 비밀은 이렇게 만든거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비밀의 철학
르네 알라데이 지음,
성귀수 옮김
개마고원,
184쪽, 9000원

#사례 1: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이웃 부족한테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 이름을 각자 가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에게도 그와 유사한 풍습이 만연했다. 한 사람이 보통 두 개씩 이름이 있는데 그 중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름은 모두가 다 아는 이름이고, 더 중요한 진짜 이름은 감춰두었다.

#사례 2: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신을 만나는 장면. 모세가 신의 이름을 묻자, 대답으로 돌아온 것이 더 많은 추측을 낳게 한다. 신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인 자이다(Sum qui sum).”

비밀에 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이 책에 들어있다, 이렇게 적으면 너무 광고 문안 같겠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타협해 적는다. 비밀에 관하여 인류가 수천 년간 궁리하고 수군거린 흔적을 한껏 그러모았다.

구약에서부터 온갖 신화와 전설이 동원되고, 소설과 철학서가 자유로이 인용된다. 신문기사나 영화 대사 한 토막도 수시로 등장한다.

이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지은이는 우리가 비밀이라 여기는 무언가의 안과 밖을 꼼꼼히 살핀다. 신이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는 대목에서 이른바 ‘호명하기’의 철학적 모티프를 집어내고, 옷(이라 불리는 체계적인 차단막)을 걸치는 인간의 행동에서 감춤과 드러냄의 심리를 읽어내는 식이다.

전직 M16(영국정보부) 요원이 소개했다는 거짓말탐지기 속이는 요령도 나와있다. 호흡을 불규칙하게 하거나 혈압을 높이기 위해 몰래 혀를 깨문다든가 등의 방법이 열거된다.

실제로 알드리히 에임즈라는 CIA 요원은 KGB에 8년 동안 정보를 팔면서 한 번도 거짓말이 들통난 적이 없단다.

지은이가 힘줘 강조하는 바는 딱히 없다. 대신 비밀에 관한 소소하고 흥미로운 잡학을 두루 섭취할 수 있다. 책은 철학적 주제를 일상의 수준에서 쉽게 설명하는 프랑스 밀랑출판사의 ‘포즈 필로(Pause Philo)’ 시리즈 중의 하나다.

한국에는 포즈 필로 시리즈 2차분으로 이 책 말고도 『사랑의 철학』『예비 아빠의 철학』등 네 권이 더 출간됐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