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방>문화예술인들 끌어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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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입(迎入)이란 글자 그대로 환영해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닌가.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정치권(政治圈)이 문화예술에 대해그처럼 극진한 애정과관심을 가졌길래 이제와서 문화예술인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이겠다는 건지 도무지 어리둥절할 따 름일세.생각컨대 상품(商品)으로 따진다면 문화예술인들의 값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구색을 맞추겠다는 거겠지.비정하고 살벌한 정치판에서보면「문화예술인」 그거 참 신선하고 그럴듯 하지 않겠나.』 여당이고,야당이고,신당이고 할 것 없이「세대교체」니「물갈이」니 하는 표현을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면서 문화예술인들을 대거 영입하겠다고 경쟁하듯 공언했을 때 간접적으로 정치입문을 제의받았다는 한 예술인은 이렇게 말했다.스스로를「정치혐 오증 환자」라고밝힌 그가 제의를 거절한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느닷없이 문화예술인들이 정치권에 의해 영입대상으로 부각된 것은 자못 신기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던 문화예술과 정치가마침내「행복한 동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기대를 품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문화예술인들이 그동안 정치에 대해 초연한 입장을견지해 온 것만은 아니다.건국이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親체제혹은 反체제적인 태도표명으로 정치적 성향을 보여왔는가 하면,국회의원이 되거나 정부내 요직을 맡아 직접 참여 한 사람들도 적잖은 숫자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문화예술인들이 정치판에 끼어들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타당성과 설득력을 잃고 있다.능력이나 적성여부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변혁기에 그때 그때 체제편의 손을들어준 것이 정치권에 의한 발탁 요인이 되는가 하면,단순한 대중적 인기가 정계진출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계개편을 앞두고 문화예술인의 영입이 관심을 모으는 최근의정치상황은 지난날과 양상이 사뭇 다르다.우선 각 정당이 내세우는 문화예술인 영입의 명분들이 흥미롭다.「참신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정당이 있는가 하면,어떤 정당 은「지명도(知名度)높고 쓸만한 사람」을 문화예술계에서 찾아내겠다는 것이고,「젊은 층의 호응을 얻으려니까」 문화예술인이 가장 적합하더라는 따위의 명분들이 그것이다.명분 치고는 꽤 그럴듯 하다.
그러나 당사자인 문화예술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아심을 가질법한 구석이 없지 않다.정치인들이 이제서야 문화예술의 가치를 새삼 인식하게 됐다는 것인지,문화예술계 이외에는 정치를 할만한「지명도 높고 참신한」사람들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 인지 그들이내세우는 명분만 가지고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임금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정치권에서 손짓을 한다 한들 호응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없다면 그뿐이고,정치를 못해 안달하는 문화예술인이 있다 한들 정치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역시 그것으로 그만이다.
문제는 정치적 능력이나 자질은 구애치 않고「각계(各界)」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쯤으로,아니면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대중적 인기를 자기네 정당에 대한 인기로 연결시키려는 얄팍한 계산에서 문화예술인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이겠다는 경우다.어떤 경위로 발을 들여놓게 됐든 뜻밖에 능력과 자질을 발휘하는 문화예술인들도 없지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멀쩡한 사람 바람만 들게 하기 십상일 것이다.
문화예술인의 정계진출을 비판하자는게 아니라 과연 우리네 정치풍토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발을 붙이고 경륜을 펼만한 여건이 마련돼 있는가를 먼저 따져보자는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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