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현지르포>3.모로코의 인텔리文盲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마주 보고 있는 나라 모로코.수도(首都)라바트에 사는 모로코인 M의 프랑스어는 완벽하다. 모로코 최고의 명문고등학교라는 라바트의 리세 데카르트에서 프랑스어로만 교육을 받은데다 모하메드 5세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모로코에는 1911년부터 45년간 지속된 프랑스 식민통치의 영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보들레르의 시와 셀린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M은 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까지 프랑스식이다.프랑스 사람들이 쓰는 제스처나 말투까지 똑같다.텔레비전도 모로코 방송은 거의 보지 않고 위성안테나로 수신되는 프랑스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얼굴에서 풍기는 왠지 모를 아랍색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프랑스 여자다.
저녁 초대를 받아 라바트 시내 한복판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를방문했다.서재를 가득 채운 책의 양에 우선 놀랐지만 정작 놀란것은 아랍어로 된 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모두 프랑스어.영어.독일어등 구미어(歐美語)로된 책들뿐이었다.
서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코란이 아랍어로 된 유일한 책이었다. 낯을 붉히며 하는 M의 설명은 아랍어를 잘 읽을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태어날 때부터 집안에서 프랑스어만 쓰고,프랑스어로 교육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설명과 함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모로코 전체 인구 의 5%는 될 거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그러나 워낙 프랑스어가 널리 통용되기 때문에 직장등 사회생활에는 하등 불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로코의 국어는 물론 아랍어다.그러나 5년간의 의무교육과정에서 아랍어 교육을 의무화한 것은 불과 몇년전부터다.지금은 처음2년간은 아랍어로만 교육하고,나머지 3년은 아랍어와 프랑스어를병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인텔리 문맹(文盲)」으로 대변되는 모로코의 정체성(正體性)위기를 보면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한단면을 보게된다.
[라바트=裵明福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