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프랑스의 오만한 核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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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 결정이 세계적인 반발과 항의에 직면하고있다. 그린피스등 국제환경운동기구를 중심으로 한 반대시위와 비난이 줄을 잇고 있고,일본등에서는 프랑스 상품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이에 따라 프랑스의 대표적 고급사치품 메이커인 LVMH의 주가가 급락하고,포도주나 코냑 수출에도 차질이 예상되는등 프랑스 국내적으로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9월부터 내년 5월까지 남태평양의 프랑스領 폴리네시아 군도에서 7~8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한다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시라크는 다음 세대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핵실험 재개결정은 번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러면서 『프랑스가 고도의 핵억지력과 국제정치적 무게를 지니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논리에서 「 프랑스의 영광」 재현을 기치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시라크의 냉전적 사고구조와 식민주의적 오만을 보게 된다.
핵전력이 냉전체제를 유지하는 현실적 축 가운데 하나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냉전은 끝났고,탈핵시대의 염원 아래 수많은 비핵국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무기연장에 합의해줬다.합의서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시라크는 핵실험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아직도 핵전력을 국제정치적 무게와 등치시키는인식구조의 구태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각형 모양의 프랑스 본토는 세계에서 가장 알짜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자기네 땅은 터럭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비록 무인도라지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핵실험을 실시하겠다는 것은식민주의적 오만이다.
프랑스의 영광과 식민주의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역사적으로 프랑스는 인류평화와 박애의 기치 아래 수많은 국제분쟁과 식민전쟁에 개입해 왔다.그러나 정작 프랑스의 이익과 대의명분을 위해전면에서 위험을 무릅쓴 것은 프랑스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상「캐피 블랑」(원통형의 백색군모)이란 이름 아래 모집된 외국인용병부대였다.지금도 프랑스는 내전상태의 보스니아에 가장 많은 유엔보호군(UNPROFOR)을 파병하고 있지만 그중 상당수가 외인부대다.식민주의적 환상에서 벗어 나지 않는한 프랑스의 진정한 영광은 결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裵明福〈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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