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황당무계 3부자의 좌충우돌 생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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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아고라,
384쪽, 1만원

쑤퉁(蘇童·45)은 당대 중국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한국에도 제법 독자가 있다. 이태 전 단편집 『이혼지침서』가 번역·출간된 이래 쑤퉁의 작품은 부지런히 들어오고 있다. 그 뒤로 장편 『쌀』『눈물』『나, 제왕의 생애』 단편집 『홍분』이 잇따라 소개됐다. 말하자면 쑤퉁은, 현재 한국 출판계에 불고 있는 중국소설 바람의 진원지 중 하나다.

이번 책은 한국에서 나오는 쑤퉁의 세 번째 단편집이다. 표제작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1999)를 포함해 네 편의 중·단편을 엮었다. 그러나 신작 모음집은 아니다. 쑤퉁이 선봉문학을 주도하던 1980년대 후반의 작품 ‘1934년의 도망’(1987)도 들어있다. 선봉문학은 문학적 실험을 중시한 80년대 후반 중국소설의 한 조류다. 쑤퉁의 장점이라면 선 굵은 서사다. 쑤퉁을 읽고나면 왠지 속이 든든해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읽히는 것도 아니다. 유려한 문장과 독특한 캐릭터 덕분이다.

표제작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가 바로 그러하다. 소설은 마씨 3부자의 세상 사는 이야기다. 하나 3부자 저마다 캐릭터가 독특하다. 장님 아버지 마헝다, 주정꾼 아들 마쥔, 철부지 손자 마솨이. 이들은 늘 부딪치고 또 화해한다.

소설은 시종 유쾌하다. 황당무계한 에피소드가 연방 이어져서다. 이를 테면 3부자에겐 공통된 버릇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남의 따귀를 올려붙인다. 아들 마쥔은 아내 장비리의 따귀를 3대 때렸다가 이혼당한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 한 대만 때리고 말 일이지 3대나 때려서 마누라가 도망갔다고 아들을 꾸짖는다. 아들 마쥔의 직업이 ‘프로 드링커’, 그러니까 술집에 고용된 이른바 ‘술상무’란 사실을 장님 아버지가 알았을 때 아들은 서른세 번 따귀를 맞는다.

그러나 막판 반전이 있다. 이 사건으로 소설은, 황당무계 삼부자의 좌충우돌 생존기에서 도시 빈민층의 너절한 삶을 파헤치는 예리한 풍자 소설로 확 바뀐다. 비극은 비극인데, 입가엔 은근한 미소가 머문다. 쑤퉁의 매력이 예 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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