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현지르포>2.빈곤속 풍요 리비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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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리비아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지난 88년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파된 팬암機 테러용의자로 지목된 리비아人 2명의 인도를 거부하는 바람에 리비아는 92년4월부터 유엔제재에 시달리고 있다.국제선 항공기 이.착륙도 금지돼 있어 수도 트리폴리까지 가려면 육로로 먼 길을 돌아야 한다.그 결과 리비아 국경에서 서쪽으로 약 2백㎞쯤떨어진 튀니지 제르바공항이 리비아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유엔제재 「덕」을 보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다.리비아인 Q는 리비아에 들어가는 비즈니스맨을 상대로 제르바와 트리폴리를 오가는 「총알택시」기사로 뛰고 있다.1회 왕복에 2백달러.경제제재 이후 형성된 암달러시장에서 바꾸면 7백 디나르(공식환율로는 70디나르)에 달하는 거금이다.리비아인의 월평균 수입이 3백디나르인 점을 감안하면 불과 10시간만에 두달치 봉급을 버는 셈이다.1주일에 몇번씩 국경 택시를 몰면서 Q는 자식8명을 거뜬히 키우면서도 상당한 돈을 모아가고 있다.
유엔제재 때문에 물건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제재 이후 오히려 물건은 훨씬 풍성해졌다.
국가가 독점하던 무역업을 90년대 들어 민간에도 허용하면서 암시장에서 바꾼 달러로 유럽.중동지역에서 상품을 수입하는 자영업자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시내 곳곳에 있는 슈퍼마켓이나 생필품점에 가보면 유엔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외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대부분 리비아 사람들에게 상점의 화려한 외제품은 그림의 떡이다.암달러 시세를 반영,값이 워낙 비싼 탓이다.
그런데도 이런 상점들이 문 안닫고 버티는 걸 보면 갑자기 떼돈버는 사람 말고도 돈많은 리비아인이 많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조달 분야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구매액의 3% 커미션은 공식화돼 있다.
외국인에게 집을 빌려준 한 고위 공직자는 자신의 해외 비밀계좌로 매년 4만달러가 꼬박꼬박 입금되는 재미를 보고 있다.
빵.밀가루등 국가가 통제하는 기초생필품 값은 놀랄 정도로 싸다.10㎏짜리 밀가루 한부대가 5디나르.암달러로 치면 1.5달러(약1천2백원)에 불과하다.하지만 사람이 빵만 먹고 사는 건아니지 않는가.
「빈곤 속의 풍요」라고 밖에 달리 표현키 어려운 오늘의 리비아 경제현실에서 사회주의와 이슬람 교리의 기묘한 결합물인 리비아식 경제체제의 한계와 유엔제재의 허상(虛像)을 본다.
[트리폴리=裵明福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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