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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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보름 후 최교수는 지프를 손수 운전하고 농장에 왔다.
여름 장마가 지나 들풀은 뜨거운 햇볕 속에 억센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미루나무에서 극성스레 매미가 울었다.
차에서 내려선 최교수를 보고 아리영은 놀랐다.
지퍼가 달린 앞여밈의 남자 블루 진 바지에 받쳐 신은 하얀 고무 장화.방금 낚시질이라도 하고 온듯한 차림새였다.
『공기가 달고 시원해요!』 최교수는 역시 블루 진 천으로 된가방 하나를 차 안에서 꺼내며 웃었다.
『다른 짐은?』 아리영은 차 안을 들여다봤다.바구니 같은 가방이 또 하나 있었다.
『저건 식물 채집함이에요.저기 둬도 돼요?』 『그럼 짐은 이가방 하나예요?』 최교수는 열흘 묵을 예정으로 왔다.십박(十泊) 정도의 여행이라면 아리영의 경우 커다란 슈트 케이스와 묵직한 화장 케이스 하나는 들고 나서야 한다.
내의,양말,손수건 여러 벌은 물론이요 갖추갖추 옷도 챙겨 가야된다.원피스,카디건,블라우스,티 셔츠,스커트,슬랙스,그리고 간단한 파티용 옷가지까지 넣어 가는 것이다.구두도 최소한 세 켤레는 가져가야 한다.굽 높은 것,얕은 것,운동화 ….
『이사가는 거요?』 산더미 같은 짐 앞에서 남편은 늘 어이없어 했다.
『최소 불가결의 것들이에요.』 여자가 한번 움직이자면 얼마나수속 절차가 복잡한지 이 남자는 모른다.「단벌 어멈」인 젖소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아리영은 오히려 남편을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최교수는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났다.어쩐지 당혹스러웠다.
라운드 네크의 흰 셔츠 속에 풍만한 가슴이 일렁거리고 있다.
그녀가 「여자」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것이었다.그것이 강렬히 섹시했다. 최교수 방은 별채에 잡아두었다.
농장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지어놓은 별채였다.
『저녁은 바비큐로 모실까 해요.일곱시에 저 안마당으로 나오셔요.』 저녁식사 준비에 골몰하던 아리영이 안마당으로 나가보니 아버지가 최교수와 담소하고 있었다.두 사람의 발치에 옥비녀처럼고운 옥잠화가 수북이 피어 있다.
아버지는 옥잠화에 대한 설명을 하는 듯했다.
최교수는 빨간 퀼로트 원피스 차림이다.
굽 높은 빨간 샌들을 맨발에 신고 있다.그것이 하얀 옥잠화 앞에 돋보였다.아까와는 사뭇 다른 그 모습에 아리영은 또 한번놀랐다.작은 천 가방의 어디에 저렇게 요염한 옷가지가 숨어 있었나…. 요술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저녁해를 등지며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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