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갈등 키우는 시위 자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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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국회 가결 후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갈등상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찬반 시위가 연일 꼬리를 물어 충돌사태로 이어질까 조마조마하고 총선이 제대로 치러지겠느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비상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갈등 봉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두가 자제하고 평상심으로 돌아갈 것을 재차 촉구한다.

5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탄핵 무효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행동'은 어제와 그제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으며, 부산.대구.광주 등 지방 대도시에서도 유사한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다른 쪽에선 보수 단체들의 탄핵안 처리 환영집회가 열리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사당과 여야 당사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오는가 하면 분신을 기도하는 등 시위가 폭력화.극단화할 조짐마저 보여 몹시 걱정스럽고 불안하다.

盧대통령과 야당이 타협하지 못한 채 서로가 자신들의 고집만을 내세우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그래서 盧대통령의 포용의 정치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민주.자민련 등 야3당도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탄핵안 처리를 강행했다는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다. 그러나 이는 이미 지난 일들이다. 누구를 탓하며 손가락질만 하고 있기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급박하다. 북한 핵문제 해결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경제난 속에 청년 실업자들은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런 국가적 난제들은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도 해결이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 마당에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적 에너지가 분산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남북이 분단된 것도 모자라 동과 서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가 갈리어 서로 증오하고 공격할 때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끝모를 추락과 파국일 뿐이다. 헌정 사상 초유인 이번 사태로 우리는 지금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후퇴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일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으려면 국론을 모아야 한다. 국가가, 역사가 앞으로 전진하려면 국민의 에너지를 한 곳에 결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각 정당은 물론 각계 원로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불법.폭력 집회를 엄단하는 등 치안질서 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시위를 자제시키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만일 이번 총선에서 반사적 이익을 얻기 위해 이런 집회.시위를 방치하거나 부추긴다면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짓는 일이다. 오히려 여론의 역풍이 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