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세월따라>강원 정선 사북.고한-잊혀져가는 탄광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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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칼같은 산들이 얽히고 설킨 가운데 비단결같은 냇물이 맑고 잔잔하게 흐르는 고장 강원도 정선.산수가 수려한 정선군은 예부터이웃 평창.영월군과 함께 산이 많아 국내에서 가장 깊은 오지마을로 손꼽힌다.
여행을 하다 보면 처음 대하는 풍경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많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정선군의 꼬불꼬불한 산길에서도 한국의 전형적인 산촌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순박한 자연이 가장 잘 살아있는 오지마을 정선으로 가는 여행길은 혼탁해진 도시인들의 감정을 말갛게 씻어내기에 더없이 좋다.특히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떼어내고 달랑 객차 두량만 매단채사람이 없는 들과 강.산을 맴도는 정선선을 타는 기차여행은 나그네에게 각별한 감회를 전해준다.
별여곡~선평~정선~나전~여량~구절리로 이어지는 철뚝에는 가난한 「감자바위」들의 한이 서려있는 듯하다.숨바꼭질하듯 산과 산을 잇는 9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경관에 취하기도 한다.
무형문화재 「정선아리랑」의 고향인 정선 아우라지는 두갈래로 흘러온 내가 하나로 어루러지는 북면 여량리의 나루 이름이다.
여량리와 유천리를 가로지르는 폭 60m 강에는 조용한 오지를찾아 가끔씩 찾아드는 나그네들을 실어나르는 나룻배가 할일 없이흔들리고 있다.
주변에 억새풀로 이름난 민둥산,아름다운 등산로가 자랑거리인 노추산등도 오지마을의 숨은 비경을 전하는데 한몫을 한다.
정선읍에서 45㎞정도 가면 또다른 인간사가 말갛게 씻기운 나그네의 심사를 흔들어댄다.
이제는 역사의 한장으로 사라져가는 탄광촌이 지금껏 보아왔던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
산이 깊은 정선군에는 북쪽에 구절리탄광이 있었고 남쪽 끄트머리에 국내 최대 탄광지역이었던 사북.고한이 자리잡고 있다.한때국가산업의 젖줄이었던 사북.고한지역의 탄광산업은 호경기였던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광산수가 44개를 헤아릴 정도로 경기가좋았었다.그러나 대체연료의 보급과 함께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지난 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지금은 사북의동원탄좌와 고한의 삼척탄좌만 명맥을 유지한 채 옛 명성은 사라진지 오래다.사북읍내는 아직 그 런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만고한은 벌써 주인없는 빈집과 상점이 그대로 방치돼 있는데다 문을 닫은 폐광의 모습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해 준다.
스산하게 폐허로 남아버린 폐광주변에서 멋모르는 코흘리개 한둘이 외지의 여행객을 보고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콧등이 다 시큰해진다.
사북 동원탄좌에서 막장생활을 하고 있는 박건주(朴建柱.35)씨는 지난 85년10월 강원산업 철암광업소에서 광부생활을 시작,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다.『「산업의 역군」이라는 찬사를 보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사양산업이라며 정리 를 한다니 가슴이 아파요.무연탄은 석유나 가스가 공급되지 않던 50~70년대 가정연료의 주종을 이뤘지요.아직도 무연탄을 연료로 쓰는 곳이 많이 남아있는데…』라며 그는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대해 울분을 토로한다.
그는 출근할 때 작업등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입에는 방진마스크를 착용한 후 손에 도시락을 들고 들어간다.
읍내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조성운(趙誠運.49)씨는 『사북~고한읍은 10년전만 해도 인구 5만명을 헤아릴 정도로 번창했었지요.그래서 市추진위까지 결성됐었어요.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폐광과 함께 주민의 50%정도가 빠져나가 지금은 하루 매상이 그때의 절반정도로 줄었어요』라며 경기가 좋았던 당시를 회상한다. 지난 83년 노사분규가 도화선이 돼 희생자까지 발생하며 무력으로 진압됐던 사북사태.지금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지만 오늘도 한많은 「정선 아라리」의 후예들은 내일의 꿈을 잃지 않고 막장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사양산업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우리는 하루살이 인생이지요.그래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석탄공사 광원들이 인명구조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같은 동료로서 긍지와 함께 뿌듯함을 느낀다』는 朴씨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진한 외로움이 묻어날 것 같은 그들의 표정과 함께.
舍北=金世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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