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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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42세의 스기야마 쇼헤이는 일과 가족 중심으로만 살아온 착실한 샐러리맨이다. 그런 그가 댄스 교습소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여인 마이를 목격하면서 ‘춤바람’이 난다. 영화 중반 무렵, 카메라는 백조처럼 점잖은 상체와 함께 책상 밑에서 열심히 스텝을 연습하는 스기야마의 발을 비춘다. 지루한 일상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소시민의 애환이 열정으로 발현된 발의 움직임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날이 따뜻해지면서 우리 주변에서는 아름답지 못한 발이 종종 목격된다. 여행기사 취재차 지난주 제주도에 다녀왔다. 오전 6시40분 첫 비행기를 탄 덕분에 일찍 제주공항에 도착했고 아침을 먹기 위해 공항 내 식당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제주의 봄철 별미인 성게국의 시원 달콤한 맛에 빠져 그릇에 코를 박고 있었는데, 함께 갔던 후배가 갑자기 물었다. “선배, 남자들의 발은 유난히 열이 많은가요?” “응?” 비로소 시선을 돌려 보니 옆 테이블 남자의 발이 보인다. 식탁 밑에서 남자의 발은 구두를 빠져 나와 시원하게 바람을 쐬고 있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정도면 중요한 용무가 있지 아닐까. 남자의 수트는 바싹 날이 서 있었다. 안에 받쳐 입은 셔츠도 하얗고 단단히 매듭을 진 넥타이도 그 남자의 오늘 일과를 말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그만큼 긴장해서 열이 발로 몰리고 구두 안이 축축해진 걸까? 짐작만으로는 그의 속사정까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지금 그대로의 모습’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쯤 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를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 안, 혹은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구두를 벗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스기야마 쇼헤이처럼 사무실 자기 책상 밑에서라면 모르겠지만(이 또한 냄새 때문에 옆 사람을 배려해야겠지만),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건 실례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식당에서 벌어진다. 군침 넘어가는 음식을 마주하고 어떤 남자들은 식탁 밑에서 으레 신발을 벗는다. 그러고는 무심코 손으로 발을 만진다. 답답한 구두를 벗어 던진 발이 바람을 맞으면서 얼마나 간지러울까. 손은 그 발이 원하는 대로 벅벅 잘도 긁어 준다. 연이어 코도 후벼 주고,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아 주기도 한다. 본인이야 음식 맛이 꿀맛일지 몰라도 옆 테이블 사람들은 있던 입맛도 떨어진다. 제발 공공장소에서는 쉽게 발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마세요.

내친김에 하나 더 부탁한다. 식사나 술자리에서 여직원들의 의향을 먼저 물어봐 주기를. 온돌방에 올라 앉은뱅이 테이블을 이용할지, 홀의 식탁을 이용할지. 인체 구조상 여자들이 좌식이 불편한 것도 이유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날이 더워지면서 여자들에게 생기는 말 못할 고민. 스타킹을 주로 신는 여자들로서는 그 나일론 양말이 땀을 잘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 냄새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래서 웬만하면 구두를 벗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물색 없는 남자들은(특히 어르신들) 온돌방을 선호해서 성큼 구두를 벗는다. 정말 여자들로서는 난감하다. 스타킹을 안 신었을 때라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맨발이 드러나는 걸 여자들은 원치 않는다. 신사라면, 여자 동료들의 고민을 조금만 배려해 주기를.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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