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하이닉스 사장 “기술도 모르면서 기술유출 방지법 입안 …”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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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책을 더 만들지 말고, 꼭 해야 할 기반 조성이나 제대로 해 달라.”

산업자원부 차관 출신인 김종갑(사진)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이 친정인 지식경제부 후배들에게 이례적인 부탁을 했다. 정책 입안이 본업인 공무원에게 아예 정책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만큼 정부가 기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양산해 왔다는 의미다. 충남 천안 지경부 공무원교육원에서 29일 열리는 연찬회에서 그는 이런 특별강연을 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머슴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 중심의 기업 도우미로 태어나 달라”며 “대부분 기업에 맡겨 두고 행정지도는 줄여 달라”고 당부했다.

김 사장은 행시 17회로 공직을 시작해 산자부 산업정책국장, 특허청장을 거쳤다. 공무원으로 31년,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1년을 보냈다. ‘을’로 지낸 1년이 ‘갑’이었던 31년간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게 한 것일까.

김 사장은 후배들에 대한 부탁에 앞서 반성문도 썼다. 경제·산업 현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그는 “기술도 잘 모르면서 기술유출방지법을 입안할 정도로 현장에 대한 이해가 겉핥기 수준에 불과했다”고 고백했다. 또 도와준다며 기업을 오라 가라 했다는 반성도 했다. 잘하는 기업은 정부에 부탁할 일이 별로 없고, 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도와준다며 오라는 것도 달갑지 않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정부가 부르면 기업이 오는 것은 괘씸죄를 면하려고 눈도장 찍는 심정 때문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하지만 관료로 승승장구해 놓고, 뒤늦게 반성문을 쓰는 것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의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30여 년간 저질러 놓고 후배들 앞에서 반성한다는 게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출어람(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을 바라는 심정으로 적었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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