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부 썩게 하는 ‘꿀 같은 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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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 미국 정부는 유례없는 공무원 인사개혁 조치를 단행하였다.

당시의 정실주의 공무원 임용의 관습하에서는 더 이상 정부를 지탱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 전문성과 청렴성에 바탕을 둔 유능한 젊은이들을 공무원으로 충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8년 또 한 번의 인사개혁법 통과를 계기로 미국은 보다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을 갖춘다. 신설된 실적보호위원회에서는 실적이 탁월하지만 억울한 인사조치를 받은 공무원의 이의를 경청하는 한편 무능한 공무원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적과 성과 중심의 인사행정이 확립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 행정부의 행정개혁 조치는 합리적 사회 기풍,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정부 주도형의 사회 발전을 도모하다 보니 행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그 결과 속으로는 관료의 힘이 막강해졌고 겉으로는 정부가 비대해졌다.

합리성을 중시하는 구미 각국에서조차 비대한 관료제의 비효율을 비판하고 있을진대, 정부 주도 국가 발전을 추구한 우리나라에서 불필요한 인력의 축적이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진정한 노력이 존재하며, 또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기획재정부에서는 직제에도 없는 7개의 TF팀을 만들어 마땅히 갈 곳 없는 고위 공무원들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가, 대통령과 언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서야 해체했다. 전형적인 위인설관(爲人設官) 사례다. 실망스러운 것은 출범부터 일관되게 작은 정부형 직제개혁을 추진해 온 현 정부의 핵심 부처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인수위에서 그토록 열정을 쏟아 만든 정부조직 개편을 일순간에 공허하게 만든 상징적 사건이다.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하는 것은 과거 참여정부에서도 초기부터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집권 5년 뒤 국민에게 돌아온 성적표는 초반의 정부개혁 의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공무원 숫자는 크게 늘어났고, 계층제 대신 도입한 팀제의 효과는 미미하였다. 각종 정부 위원회는 400개에 육박했지만, 제대로 일을 해내는 위원회는 소수였다. 결국 행정 효율성은 추락했다.

이러한 위기의 근본적 치유책은 정부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실적주의를 확고히 세우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실적주의의 시대에 이미 돌입하였다. 공무원들도 능력과 성과에 기반하여 당당하게 평가받고 단기간에 승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대신 능력 없는 자들은 물러나야 한다. 온정주의적 인사는 당사자에게는 달콤한 꿀과 같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독이다. 독이 온몸에 퍼지면 끝이다. 경쟁력 없는 부문은 사회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차츰 낙오되고 결국에는 붕괴된다. 그것이 정부 부문이라면 정부의 몰락은 결국 국가의 붕괴로 이어진다.

실적주의의 확립은 문화의 문제이다. 온정주의에 얽매이는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한 실적주의는 확립되기 어렵다.

이미 우리 정부는 능력 본위의 인사조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가 문화로서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공무원들이 인식해야 한다. 아니,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이 이미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다그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언론의 감시도 녹록지 않다. 현명한 국민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공무원 스스로의 깨달음이다.

온정주의로 회귀할 길은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모두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넜다. 공무원들은 과거의 온정주의에 안주하려는 꿈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사실 우리 국민은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항상 그래 왔다.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불미한 사건에 따른 실망도 큰 법이다. 국민은 정부와 관료가 정실이나 개인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합리적 조직관리의 전통을 세워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정실주의의 관습에서 벗어나 모든 정부 부처가 국민의 칭찬을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나태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