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경제통합갈등과과제>2.실업과 2등국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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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슈베린-.숲과 호수의 8백년 고도(古都).옛동독 땅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머른州의 주도(州都)다.도심엔 제네바를 연상케하듯 시원스레 물을 뿜어 내는 파펜타이히 호수의 분수가 싱그럽다.
그 옆으로 길다랗게 펼쳐져 있는 카를 마르크스 슈트라세(街).거리의 한 벤치위엔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두 젊은이가 한 손에 맥주병을 든채 힘없이 너부러져 있다.때때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마치 무언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것 같다 .디터 헬비히(24)와 카스트 안그릭(23).두 사내의 전직(前職)은 조선소 용접공.현재는 실업자다.
『이럴 수가 있느냐』며 헬비히가 먼저 입을 뗐다.『통독 후 조선소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중 80%가 쫓겨났다』는 그는 『왜일할 기회마저 주지 않느냐』며 울분을 토로했다.
옆자리의 안그릭도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한숨을 내쉰다.요즘은 그나마 생계를 잇기 위한 막노동일 찾기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두 사람은 푸념이다.동구권에서 넘어온 값싼임금의 노동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통일이냐』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반문했다.
5년전만해도 이들은 한달에 1천~1천5백마르크(56만~84만원)의 봉급을 받던 당당한 기술자였다.
그러나 통일이후 불어온 민영화와 산업합리화의 바람은 거세기만했다.불경쟁력없는 기업은 문을 닫았고 생산성없는 직장엔 대규모감원이 단행됐다.
불과 5년사이 조선소와 국영농장에 종사하던 20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슈베린의 인구는 12만9천명.州 전체 인구 2백60만명 가운데 취업연령만을 떼놓고 보면 엄청난 수의 일자리가날아간 셈이다.
실업의 강풍은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머른州에만 불지는 않았다.또다른 신생州인 작센 안할트州의 비터펠트공단도 심각하긴 마찬가지.통독前 동구권 최대의 화학단지였던 이곳도 어김없이 폐업과 대형 감원바람이 몰아쳤다.
「화학 콤비나트 비터펠트」는 공산정권치하인 지난 89년에만해도 무려 1만8천여 근로자의 일터였다.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일자리는 불과 5천1백여개.
3년간의 실업자 생활끝에 2년전 간신히 바이엘공장에 입사했다는 우테 발터(38.여)는 『현재 비터펠트의 공식 실업률이 13%지만 실제로는 무려 30%에 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뉘른베르크市의 노동시장 및 직업연구소가 실업에 관해 올해초 조사한 결과도 그녀의 말을 잘 뒷받침해 준다.
조사결과 취업연령 인구중 세사람 가운데 단 한사람이 일자리를갖고 있다는 것.
이렇듯 옛 동독땅은 예외없이 실업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동독인들이 안고 있는 통일의 가장 큰 후유증은 실업문제가 아니다.오히려 그 것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이등국민」이라는 열등감』과 『동독인을 바라보는 서독인들의 차가운 눈초리』라고 슈베린市의 한 신문사 간부인 뤼디거 룸프(42)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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