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살아있는 시민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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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형 참사의 절망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로 절망을 넘어선 인간승리가 있었다.폐허더미속에서도 위기를 극복하는 위대한 시민정신은 유감없이 발휘됐다.뒤늦은 관(官)의 구조체계에 앞서 수많은생명을 건져낸 자원봉사대가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한 환자는 붕괴소식을 전해듣고 환자복을 벗어던진 채 사고현장으로 달려가 4명의 목숨을 건지고 자신은 실신했다.사고 당일 저녁 인근 아파트 주부들은 구조대원들을 위해줄지어 저녁밥을 지어 날랐다.대형사고 때마다 팔 을 걷어붙이고앞장서는 해병전우회 회원들은 지하 매몰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생명을 건져올렸다.철근 절삭작업이 지연된다는 방송을 듣고 용접과비계기술자들이 다퉈 현장으로 달려왔다.
피가 모자라자 응급실 입구에는 헌혈자들이 줄지어 늘어섰고,삼성사회봉사단의 3천여직원이 헌혈을 했다.약사회 회원들은 사고현장에 천막을 치고 철야로 임시약국을 운영하고 있고,건설업체들이앞장서 구조장비를 제공했다.한 설렁탕전문점은 가 게문을 닫고 전 종업원과 가족들이 사고현장에 나와 설렁탕을 끓여 구조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기업과 자원봉사단체,그리고 시민들이 제각기 제역할을 찾아 나섰다.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위대한 시민정신 발휘가 아닌가.위기극복의 시민정신,어려움과 비극을 함께 나눠 극복하자는 봉사정신이 붕괴의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말로만 하는 공동체정신이 아니라 내 이웃,내 마을의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스스로 봉사할 일을 찾는데서 시민정신이 꽃핀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보고 있다.
이 봉사의 시민정신이 보다 체계적으로 다듬어지고 조직화된다면그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무턱대고 달려가는 자원봉사 보다는기능과 역할분담이 체계화되고 조직화되는 결집된 시민조직으로 편성되는 일이 시급하다.이런 봉사조직이 위기때마 다 새롭게 조직될 게 아니라 상시적으로 가동되어 훈련된 조직체로 살아 있다면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살아 있는 시민정신을 조직화.체계화할 필요성을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더욱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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