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일단 투자 유치하면 그 뒤엔 신경 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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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회장단 기자회견에서 장 마리 위르티제 신임 회장<左>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 주한 유럽 비즈니스맨들이 꾹 눌러온 과거 불만을 쏟아냈다.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회장단은 2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에 큰 그림을 그려 보냈다. 외국기업 투자환경을 개선해 주면 우리도 열심히 투자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A380’ 정책 도입 방안이다. 모임은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였지만 한국의 외국인 투자 규제와 비즈니스 인프라 미흡을 꼬집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투자환경 성토장 된 회견장=장 마리 위르티제 EUCCK 회장은 “한국 고위관리들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좋은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해 왔지만 제대로 이행된 일이 적다”고 비판했다. 한스 베른하르트 메어포르트 EUCCK 부회장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외국기업 투자유치 때까지는 적극 돕지만 일단 뿌리 내리면 비협조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며 “유럽 업체의 의욕을 좌절시킨 사례가 여러 건”이라고 말했다.

EUCCK는 네덜란드의 세계적 생명공학회사 K그룹의 백신 자회사 사례를 들었다. 2000년 국내에 진출한 이 회사는 경기도의 한 시(市)에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를 갖추고 연 매출 1000억원 가운데 90%를 수출하는 국내 완제 의약품 수출 1위 기업으로 컸다. 국내 진출 이후 시설투자 등에 1680억원을 썼다. 문제는 공장부지의 소유주가 2005년 “시가 부지를 비우라고 요구하니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용지 임대계약은 2015년까지로 돼 있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해당 시 측은 “2001년 철도 분당선 연장선 노선이 공장을 관통하는 걸로 결정돼 공장 철거가 예정된 사안”이라고 답했다.

이날 참석한 주한 EU 기업인 가운데는 “한국 관료들이 자의적으로 규제를 적용해 한국 법을 제대로 지키기 힘들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또 관리들이 특정 기업이나 업종을 겨냥해 규제를 남발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747에 화답하는 A380 정책=EU는 투자액 면에서 한국의 최대 투자 지역이다. 한국에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 중 41.2%를 차지한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그린필드 프로젝트(신규 공장이나 사업장 설비 투자)’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외국인 직접투자는 3년 연속 줄고 있다.

EUCCK는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 ‘A380’ 정책을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 정책’에 화답한다는 뜻에서 유럽 에어버스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이란 이름을 붙인 것. 선진 한국(Advanced Korea)을 위한 투명성 등 3가지 원칙과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8가지 목표, 부패 0(제로)을 뜻한다.

위르티제 회장은 “(이 대통령의) 747 점보 제트기도 신뢰성 있는 비행기지만 새 정부가 A380기에 탑승하면 완벽한 착륙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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