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노골적 성행위 표현 있어야 음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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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터넷 성인동영상이 남녀 간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경우 음란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우리 사회 성도덕의 변화를 반영해 음란물 판정에 개방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인터넷 포털사에 성인 동영상을 공급한 콘텐트 제공업체 대표 김모(45)씨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고 23일 밝혔다. 김씨는 2004년 8월부터 8개월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8세 관람가’로 판정받은 일본 성인비디오 12편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야후코리아 VOD 성인페이지에 공급하다가 포털사와 함께 기소됐다. 김씨가 포털에 공급한 동영상은 30~40분 분량의 단편 성인물로 속옷을 입은 여성의 자위 장면이나 남녀 간 성행위와 애무 장면을 묘사했지만 성기나 음모의 직접 노출은 없었다.

1, 2심은 “인터넷 동영상은 청소년을 유해 환경에 빠뜨릴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크며,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전혀 없이 서로 모르던 남녀가 만나 벌이는 성행위를 신음소리와 함께 묘사할 뿐 예술성이 전혀 없다”며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동영상이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더라도 형사법상 규제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할 정도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음란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터넷 동영상의 위험성은 엄격한 성인인증 절차를 마련하도록 강제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음란 여부를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음란물에 대한 기존 판례는 1967년 영화 ‘춘몽’과 70년 성냥갑 명화사건에서 “성욕을 자극해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선량한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뒤 40년 동안 유지돼 왔다.

대법원 배현태 홍보심의관은 “이번 판결은 기존 판례를 깬 것은 아니나 성 문화에 대한 국민의 시각 변화를 담아 음란물의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염용표 변호사는 “대법원이 합법 성인물과 음란물의 경계를 확정한 판결”이라며 “케이블 성인채널이나 위성 스카이라이프 성인채널에 방영되고 있는 에로물의 수준은 음란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해당 동영상을 게시했다가 지난해 6월 1심에서 벌금 700만~1500만원의 유죄 선고를 받은 포털사들의 후속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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