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첫 탄핵 정국] 국회 극한 대치 시간대별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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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발의가 또 다른 기록을 낳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열린우리당 의원들은 11일 밤 국회에서 철야를 했다. 이날 표결 처리가 무산된 뒤 발생한 '적(敵)과의 동침'이었다. "표결하겠다"는 쪽이나 "결사 저지하겠다"는 쪽 모두 탄핵안 싸움을 성전(聖戰)이라고 규정해 생긴 결과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난 10일 오후 8시를 기해 탄핵안 의결정족수(181명)를 확보했다"면서 "盧대통령은 이미 정치적으로 탄핵됐다"고 선언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민주주의 근간을 파괴시키는 난동을 국민과 함께 저지하겠다"고 맞섰다. 대통령 탄핵안의 최종 운명은 표결 시한인 12일 오후 6시27분에 갈린다.

*** 09 : 00 "출당·공천 배제"

오전 회의에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오늘은 당과 나라의 사활이 걸린 날"이라며 "당론에 따르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출당 조치를 하거나 공천을 박탈하겠다"고 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오늘과 내일은 민주주의가 승리하느냐와 후퇴하느냐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면서 의원들을 독려했다.

*** 11 : 40 "탄핵 밖에는…"

盧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탄핵이란 불에 기름을 부었다.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회견을 보고난 뒤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탄핵으로 간다"고 선언했다. 의사 출신인 정의화 수석부총무는 "환자의 상태가 가망 없을 때 말하는 '호플리스'라는 단어가 생각난다"고 했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사과를 기대했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졌다"고 냉소했다. 탄핵안 발의에 반대했던 의원들은 대통령 회견을 보고난 뒤 속속 "탄핵 당론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의 자살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오후 들어 3당은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출정식을 했다. 저지조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崔대표는 "지금은 전쟁과 흡사한 상황"이라며 "내일 오후 6시27분까지 의사당을 떠나지 말자"고 했다. 민주당 유용태 원내대표도 "본회의장에서 날밤 샐 각오로 임해달라"는 지침을 내렸다. 두 당의 원내행정실 직원들은 모포.침낭 확보에 나섰다.

반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야당이 탄핵안을 철회하면 대통령과 4당 대표 회담을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 14 : 30 "의장을 확보하라"

본회의 사회권을 가진 박관용 국회의장은 여야의 표적이 됐다. 한나라당은 오경훈.이승철 의원 등 부총무단을 의장실에 배치했다. 열린우리당도 이부영.이창복 의원 등을 의장실로 보냈다. 의장실은 여야 대치의 최전방으로 변했다. 열린우리당은 본회의장 안의 의장석 주변에 의원 20여명을 배치하는 이중 방어막을 쳤다.

오후 4시10분 한나라당 의원들이, 2분 뒤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 후 각각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본회의장에는 금세 긴장이 감돌았다.

오후 4시25분 朴의장이 본회의장에 나타났다.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이 "막아라"고 소리쳤으나 야당의원들과 의장 경호원들이 朴의장을 호위했다. "너희들 뭐하는 거야"(민주당 김방림 의원) 등등 고성이 난무했다. 열린우리당이 의장석을 계속 점거하자 朴의장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이런 식으로 막는다면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호통을 쳤다. 이 시간 한나라당 의원 수는 131명, 민주당은 48명이었다. 두 당 지도부는 의결정족수 확보를 위해 휴대전화로 계속 불참의원들을 찾았다.

여야 대치의 포로가 된 朴의장은 오후 5시53분 "오늘 회의는 더 이상 할 수 없어 내일 오전 10시에 본회의를 열겠다"고 말한 뒤 본회의장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11일 탄핵안 표결 시도는 무산됐다.

*** 23 : 00 "함께 밤 세우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심야 의원총회를 열고 오후 11시쯤부터 철야 농성에 돌입했다. 洪총무는 朴의장에게 "오늘 의장 공관으로 가면 내일 노사모가 출근을 저지할 것"이라며 "우리와 함께 밤을 새우자"고 했다. 그러고는 朴의장을 '보호'하기 위해 의원들을 의장실에 배치했다. 철야농성 중 崔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저쪽 지지가 60%, 우리 쪽 지지가 40%라 해도 40% 결집이 선거전략상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1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이런 장면을 일본 NHK,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등 외신기자 100여명은 전 세계로 타전했다.

박승희.신용호.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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