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본비디오>하얀 면사포-스승과 10대 제자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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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0면

추리소설뿐 아니라 모든 소설. 영화에서 「불륜」이란 매혹적인소재다.하지만 자칫 잘못 다루면 그렇고 그런 내용에 뻔한 줄거리로 빠지기 일쑤다.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그려내느냐가 작품 성공의 관건이다.
얼마전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재킷을 읽어보다 우연히 집어든 『하얀 면사포』는 「불륜과 사랑의 차이」를 기가 막히게 설명해준 작품으로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유부남 선생님이 불량 학생 교화를 위해 힘쓰다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프랑스 영화로 충격적 영상 속에 펼쳐지는 10대 소녀와 중년 남자간의 미묘한 감정처리 묘사가 돋보였다.
진부한 소재지만 불륜을 사랑으로 느끼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욕심부리지 않은 잔잔한 영상속에 잘 녹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최근 자신의 새 영화 홍보차 내한한 바네사 파라디는 이 영화에서 청순하면서도 도발적인 표정으로 사랑에 빠진 소녀 특유의 발랄함과 질투심등을 너무나 잘 표현해 탄성을 자아낼 정도였다.
또 소녀가 시골로 좌천된 선생을 쫓아 학교앞에 방을 빌린뒤 날마다 선생만 바라보다 자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선생의망연자실한 표정은 「진정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의 그것이었다. 비디오를 끈뒤 『불륜을 너무 미화한 것 같지 않느냐』는 나의 은근한 질문에 집사람은 『영화를 볼때는 세간의 도덕적 잣대는 잠시 넣어 두는 법』이라며 점잖게 받아 나를 머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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