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통계 뒷받침없는 경제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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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중매체들이 전보다 훨씬 많은 통계 자료들을 전하는 것이 눈에 띈다.사회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공학이 정교해짐에 따라 통계 자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므로 반가운 일이다.
찬찬히 살펴보면,아쉽게도 그런 통계 자료들의 질이 그리 높지않다는 것이 드러난다.그것들의 대부분은 여론 조사의 결과들인데,여론 조사의 결과들은 대체로 정책을 세우거나 평가하는 데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가치있는 자료들,특히 정책 의 평가에 관한자료들은 엄격한 방법론에 따라 조사를 거쳐서야 얻어진다.
얼마 전에 시행된 쓰레기 종량제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그 제도는 여러 앞선 사회들에서 시도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것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가 시민들의 공중 도덕이므로 그것의 도입에 대해선 회의적 견해가 있었다.이제 그런 견 해가 현실적이었음이 드러났으니 걱정했던 나쁜 효과들은 다 나왔지만 좋은 효과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선거철이라 단속이 느슨해지자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늘어나 그것의 시행에 드는 비용이 무척 크다는 사실만 새삼 깨닫게 된다.따라서 이제는 그것을 평가해 개선하거나 폐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먼저 그것의 비용과 혜택에 관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자료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공표된 자료라곤 시행하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쓰레기가 몇십%가 줄었다는 쓰레기 처리장 직원들의 증언이 전부였다.
실은 그런 증언마저 단순히 쓰레기의 부피를 따진 것이므로 믿을만한 자료가 못 된다.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면 사람들은 쓰레기의 부피를 줄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근년에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종량제가 실시된 지역에선 쓰레기의 부피가 37%줄었지만 무게는 14%밖에 줄지 않았다.그 차이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밟아 부피를 줄인데서 나왔다.그런 반응은 종량제가 실시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나오는 현상으로 처음 종량제가 실시된 도시의 이름을 딴「시애틀 짓밟기(Se attle stomp)」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실제로 준 14%도 온전하게 준 것은 아니다.감소량의 38%는 재활용 쓰레기의 증가에서 나왔는데,늘어난 재활용 쓰레기는 대부분 경제성이 없는 것들이어서 그냥 매립장에 묻는 것보다 못하다. 경제성이 있는 쓰레기는 재활용이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재활용됐다(우리 대중매체들은 독일의 적극적 쓰레기 재활용 정책을 크게 칭찬하지만,독일은 몇해 전부터 경제성 없는 재활용품들이 쌓여 골치를 앓아왔다.게다가 유럽 통합 뒤엔 그런 정책이 다른 나라들의 쓰레기도 끌어들이기까지 한다).감소량의 28%는「다른 방법」으로 처리됐는데,「다른 방법」은 회사 쓰레기통이나 후미진 데 버리거나 불법적 소각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됐다.나머지 34%는 거름을 더 많이 만들 거나 구매 관습을 바꾼 것으로 설명됐다.그래서 그 조사는 쓰레기 종량제는 실효가없다는 종래의 정설을 한번 더 확인했다.
그런 조사들은 대부분 경제학 교수들이 해야한다.정책을 세우고시행하는 정부가 그 정책의 평가에 열심일 수는 없다.쓰레기 종량제가 멋진 제도라고 생색낸 정부가 그것이 잘만하면 본전은 될수 있는 제도라는 조사결과를 공표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보다중요한 까닭은 그런 통계 자료의 수집이 경제학 발전에 필수적인바탕이라는 점이다.세상의 움직임에 관한 실증적 자료없이는 과학이론은 얼마 나아가지 못한다.오스틴 로빈슨이 술회한 것처럼 1920년대 이전의 경제학자들 은 필요한 자료가 없어 경제성장을다루지 못하고 대신 미시경제학에 주력했다.우리 사회에 믿을만한통계자료가 드물다는 사실과 우리 사회에 경제학자들이 많고 우리경제의 빠른 발전이 세계적으로 연구 대상이 됐는데도 우리 경제학계가 좋은 이론을 내놓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의 발전이 계량하기 힘든 양들을 계량하는 방법의 정교화에 크게 힘입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게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식수(識數:numeracy)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정책의 수립과 평가에 도움이 될 만한 통계자료들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까닭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을 밝히는 것이라면 여론 조사가 모처럼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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