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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공통의 역사에 관심 갖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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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시아의 경제통합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2월 인도 방문 때 이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뉴델리 교외에 대규모로 들어서고 있는 쇼핑센터들을 둘러보면 유럽과 미국 상품들과 함께 일본·한국·중국 상품이 넘쳐난다. 거리에선 일본의 스즈키나 도요타, 한국의 현대 자동차를 많이 볼 수 있다. 중국과 인도의 무역관계나 인도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교역규모는 최근 몇 년 새 30%를 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 경제 동향을 보면 1970년대에는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의 신흥공업경제지역(NIEs)이 성장했고 이어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동남아시아 지역, 그리고 90년대 이후엔 중국이 급성장했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에서 동남아에 걸친 동아시아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인도의 경제성장이 더해졌다. 일본과 한국·중국 연해 지역에서 동남아로 이어지는 거대 경제벨트는 21세기 세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성장했다.

이런 경제통합으로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나날이 커지고 인적 교류도 크게 늘었다. 필자가 도쿄에서 인도 델리까지 타고 간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도쿄에서 동남아로 가는 비행기 역시 늘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아마 한국과 인도·동남아를 오가는 비행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남아의 허브공항이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 태국의 수완나품 공항 역시 언제나 아시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물적·인적 교류가 급증한 것에 비하면 사람들의 상호 이해는 그다지 진전되지 않은 것 같다. 일례로 대다수 일본인이 ‘인도’ 하면 떠올리는 것이 불교와 커리 정도다. 알고 있는 인도 이름도 간디와 네루가 고작이다. 최근 관광과 동남아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인들이 다른 지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긴 했다. 하지만 13세기 이후 근대에 걸친 베트남·캄보디아·태국·미얀마 간의 매우 복잡한 항쟁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캄보디아인들이 베트남·태국에 대해 갖고 있는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는 동북아시아인은 어느 정도나 될까. 일본에서 세계사를 배운 대학생들은 16세기 이후 서유럽 국가들의 아시아 진출사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잘 알고 있다. 또 6세기 무렵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동북아로 전파됐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에 불교가 보급된 과정, 또 이슬람이 동남아에 전파된 경위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에메랄드 부처인 방콕의 명소 ‘왓 프라케오’의 회랑에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서사시인 ‘라마야나 이야기’(태국에서는 ‘라마키안 이야기’라고 불린다)를 그린 벽화가 있다. 가이드 설명 없이 이 벽화를 이해할 수 있는 일본인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라마야나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원숭이 하누만은 동남아나 남아시아 지역 어린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본과 한국 어린이는 모를 것이다. 반대로 동북아에서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손오공을 동남아와 남아시아 아이들(중국계를 제외하고)은 알지 못한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가요·드라마가 유행하고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보급되면서 아시아인들의 상호 이해 폭은 더욱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 지역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은 한반도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각국의 역사를 뛰어넘는 아시아 공통의 역사를 공유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연구해 보면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모두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오공의 탄생 배경을 파고들다 보면 라마야나의 하누만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서유기’ 연구의 권위자 나카노 미요코 교수의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다나카 아키히코 일본 도쿄대 교수
정리=박소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