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北美 경수로협상 타결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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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과 미국과의 경수로 세부현안에 관한 협상이 오랜 접전 끝에 일단 마무리됐다.지난 5월20일부터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준고위급 회담에서 그동안 이견을 보였던「한국의 중심적역할과 부대시설 지원」문제를 한국.북한.미국등 3국이 약간씩 양보 합의함으로써 북한핵문제는 한고비를 넘기게 됐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한국은 과도한 추가부담 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수 있다.
자금줄인 한국을 배제하면서 경수로 지원금을 받아내려는 이번 협상에서의 북한 의도를 두가지로 분석해볼 수 있다.
핵사찰이 진행되면서 북한은 궁지에 몰린 것이 사실이.북한이 이미 핵개발을 완성했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더 유리한 입장이겠지만,북한의 협상태도를 보면 아직까지 핵무기를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당분간 완성된 핵무기를 갖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무리하게 마찰을 일으키는 것보다 차제에 핵시설을 경제적인이익을 위해 협상재료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다른 한가지 해석은 아직 완성은 못했지만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국의 중심 역할등을 빌미로 시간을 벌자는 의도가 있으리라는것이다.이는 핵시설은 동결시키더라도 나머지 기술개발은 충분히 은폐된 상태에서도 가능하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북한이 이처럼지연 전술 차원에서 협상을 진행시킨 것이 라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우리로서는 이제 원점으로 되돌아가 생각해봐야 할 때다.먼저 왜 경수로 협상이 필요했던가 하는 원론적인 점을 검토해야 한다.이 협상은 북한의 핵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해체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경수로는 하나의 보상으로 제안된 것이 다.따라서 경수로가 문제돼 핵동결 의지를 퇴색시킨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어떻게든지 북한이 우리에게 위협을 줄 수있는 근본적인 뿌리를 없애자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제 우리도 어느정도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콸라룸푸르 회담에서 북한은 실질적으로는 한국 표준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했고 묵시적으로 인정했다고 보아도 좋을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트집을 잡을 소지는 있지만 일단 북한이KEDO를 계약 주체로 인정하는 한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있다고 보인다.북한이라는 특수한 상대가 걸리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돈을 많이 부담하는 측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일단 계약이 성사되면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사업추진의 완급을 조절할 수도 있고,최악의 경우 취소시킬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더 이상 지연 명분을 주지 말고 계약을관철시키는 게 오히려 북한의 딴전을 막을 수 있는 방 안이라고생각한다.
혹자는 미국 기업이 주계약자가 되는 경우를 염려한다.실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미국 기업이 주도하려 든다면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 대응하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경수로 건설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건설이 착수되면 북한은 더 이상 핵시설 운영 재개를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이와함께 한국기술자들의 입북은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질 것이 며,장기적으로는 북한을 달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남북 대화는 억지로이루어진다고 해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차라리 시간을 갖고 미국을 통한 간접대화로부터 서서히 물꼬를트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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