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호킹’이상묵 교수는 요즘 … 장애인 ‘휴먼 네트워크’ 이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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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장애를 딛고 강단에 선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右>가 19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에 앞서 박은수 이사장과 인사하고 있다. 박 이사장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다. [사진=안성식 기자]

‘서울대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19일 경기도 분당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첫 외부 강의를 했다. 2주 전 공단 산하의 보조공학센터는 “장애인의 취업을 돕는 공무원들에게 이 교수의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 달라”고 교육을 요청했다. 이 교수는 100여 명의 공무원 앞에서 직접 입김으로 움직이는 마우스로 컴퓨터를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작은 정보기술(IT) 하나가 나같이 손도 못 쓰는 장애인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바꿔 놓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IT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영어로 돼 있다”며 “보조기기의 국산화·한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날 강의가 끝난 뒤 ‘보조공학기기 명예 체험단’에 위촉됐다. 보조기기를 직접 사용하고 모니터링 결과를 분석하는 역할이다. 이 교수는 “실제로 장애인이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의가 끝날 때쯤 이 교수는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흑백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타자 루 게릭이었다. ‘루 게릭’이라는 병의 이름을 낳은, 불치병의 대명사이기도 한 선수.

“저의 장애와 루게릭병은 비슷합니다.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스타디움에서 은퇴식을 할 때, 그는 이런 고별사를 합니다. ‘나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The 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 그는 다치고 난 뒤에 알게 됐답니다. 지금껏 살았던 삶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이 교수의 이야기가 본지를 통해 보도된 5일 이후, 그를 중심으로 ‘휴먼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그는 2주 전 서울대 분당병원 재활의학과 신형익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연초에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친 여대생이 있는데 만나 주시겠느냐”고 했다. 멘토 역할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만남은 17일 서울대 분당병원에서 이뤄졌다.

여대생 안모(22)씨는 1월 교통사고를 당해 5번 척추를 다쳤다. 이 교수는 2년 전 교통사고로 4번 척추를 다쳐 목 아래가 완전 마비됐다. 안씨도 이 교수와 거의 같은 처지다. 안씨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애써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내가 어떤 IT로 세상과 소통하고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정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기로 했다.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장애인이 이 교수에게 연락해 조언을 부탁하고 있다. 이 교수는 만남을 원하면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는다. 장애인 관련 단체와 정부에서도 “이 교수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물밀듯이 해왔다. 이화여대에서는 “1학기에 한 번 채플 시간에 명사를 모시는 시간이 있는데, 이 교수가 와 달라”고 부탁했다. 채플에는 3000여 명이 참석한다고 한다. 보도 후 이 교수는 단 한시도 쉴 수 없게 됐다. “귀찮지 않으냐”고 물으니 “장애인들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꿈이다. 중앙일보가 나에게 8차로 도로를 놔 줬다”고 했다.

글=강인식·장주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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