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남녀 신예 피아니스트 베토벤곡 ‘자존심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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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피아니스트 김선욱(20)은 22일 대전에 간다. 조이스 양(22)과 BBC 필하모닉이 대전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듣기 위해서다. 다음 날 김선욱은 김해 문화의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조이스 양과 연주한 BBC 필이 이날은 김선욱과 호흡을 맞춘다.

피아노의 두 신성(新星)이 같은 곡으로 맞붙는 셈이다. 세계 무대로 향하는 동세대의 두 연주자는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피아니스트다. 피아니스트의 기본기가 잘 드러나는 곡인 베토벤 협주곡 3번으로 무대에 오르는 만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발은 항상 조이스 양이 조금 빨랐다. 조이스 양은 2005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차이콥스키·쇼팽 콩쿠르 등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대회다. 그로부터 1년 후 김선욱이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 소식을 전했다. 동양인 최초의 우승이었다. 각각 미국·영국의 최고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조이스 양은 뉴욕 필의 연주에 3년 연속 초청되면서 경력을 다졌고, 김선욱은 올해 하반기부터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06년 조이스 양이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할 때 김선욱은 청중 중 한 명이었다. 당시의 곡목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김선욱은 지난해 런던 무대에 데뷔하면서 런던 필하모닉과 이 곡을 연주했다. 특유의 신중한 터치와 해석이 돋보인 이 무대를 통해 김선욱은 세계적인 매니지먼트 회사 아스코나스 홀트의 낙점을 받아 소속 아티스트가 됐다.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정명훈 등도 이 회사 소속이다.

조이스 양은 아스코나스 홀트의 경쟁사인 ICM에서 활동하고 있다. 깊이있고 구조적인 김선욱의 연주에 비해 쾌활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승부를 거는 편이다.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밝은 연주와 뛰어난 테크닉이 조이스 양의 장점이다.

연주 스타일의 차이는 서로 다른 성격에서 온다. 서울에서 태어나 국내에서만 공부한 김선욱은 사려깊고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 반면 11세에 미국으로 간 조이스 양은 활발하고 붙임성있는 편이다. 성격 차이는 활동 내용에도 나타난다. 콩쿠르 입상 이후 김선욱은 함께 작업할 음반사를 신중히 고르고 있지만 조이스 양은 콩쿠르 실황 음반으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곡목 선정은 김선욱이 약간 빨랐다. “베토벤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라 가장 좋아하는 협주곡”이라며 3번을 고른 김선욱에 이어 조이스 양도 이 곡을 하고 싶다고 나섰다. 자신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했던 곡인 만큼 가장 자신있게 연주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연주에 대한 욕심만큼은 비슷한 셈이다.

이번에 처음 내한하는 BBC 필의 지휘자 자난드레아 노세다는 “한국이 이렇게 훌륭한 프로필의 연주자가 동시에 설 수 있는 나라라는 데 놀랐다”며 “같은 곡을 다른 스타일로 연주할 두 젊은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존의 해석 대신 굴곡이 확실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지휘자로 이름이 높은 노세다가 두 피아니스트 중 누구와 더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김선욱과 BBC 필은 23일 김해에 이어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26일 구미시 문화예술회관에서도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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