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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진압 야전군 급파 … “사원 불타고 사망자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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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정부가 티베트(시짱자치구) 독립 요구 시위대에 제시한 투항 최후통첩 시한이 17일 자정으로 만료되며 수도 라싸(拉薩) 시내에 검거 바람이 일고 있다.

라싸의 한 티베트인은 17일(현지시간) BBC 웹사이트에 “많은 사람이 체포됐으며 창쿵사원에서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국영TV에선 사원이 불탔다는 뉴스도 방송됐다고 한다. 라싸 외곽에 사는 한 티베트인은 “시내를 향해 군인들을 실어 나르는 차량 행렬이 이어지는 것을 목격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TV에 찍힌 사람들은 무조건 체포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다른 사람들까지 체포될까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홍콩 방송들은 18일 군인 1만여 명이 라싸 시내에 진입했으며 시위 진압 경찰 1000여 명이 장갑차의 지원을 받으며 가택수색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공안 당국이 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이 대피한 것으로 알려진 주요 사원을 포위하고, 캄바 티베트족 거주지의 젊은 층을 주요 검거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18일 오전 중국 칭하이성 시닝역에 내린 란저우군구 소속 현역 군인 수백 명이 군용차와 버스 등에 나눠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현지인들은 “티베트인들이 모여 사는 장족 자치주에서 시위가 일어나 진압하러 급파된 군인들”이라고 말했다. [사진=장세정 특파원]

18일 오전 10시쯤 칭짱(靑藏)철도를 타고 라싸로 가기 위해 티베트 인근 칭하이(靑海)성의 시닝(西寧)역으로 들어갔다. 시닝은 옛 티베트 지역이다. 역 구내의 분위기는 매우 싸늘했다. 입구에선 군인 3~4명이 승객들의 짐을 일일이 점검했다. 한 승객은 “평소에는 역무원들만 나와 검표했는데 며칠 전부터 군인들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라싸행 창구 앞에는 공안요원 대여섯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 공안요원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둘러댔지만 “관광객이라도 외국인은 라싸에 못 들어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라싸가 아니라 칭하이성 관할의 거얼무(格爾木)까지라도 갈 수 없느냐”고 사정했으나 그는 “외국인은 당분간 라싸행 열차를 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다른 공안요원은 “관광을 하려면 이곳 시닝에서 하라”고 말했다. 보안 검색이 이처럼 강화되자 라싸행 표를 사려는 현지인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군용 열차가 도착하더니 인민해방군 수백 명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 진압용 무장경찰(武警)이 아니라 완전 군장을 한 군인들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주민이 “앗! 야전군이다”고 외마디를 질렀다. 실전에 투입되는 전투부대 요원들이란 뜻이다. 군중 속에 섞여 군인들의 장비를 살펴보니 ‘란저우(蘭州)군구’라는 표지가 선명했다. 중국의 7대 군구(軍區) 중에서 간쑤(甘肅)·칭하이·닝샤(寧夏)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를 관할하는 부대다.

외곽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한 군인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란저우에서 왔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군인이 시닝에는 무슨 임무로 왔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는 “그건 왜 묻느냐”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옆에 서 있던 한 주민이 기자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는 “라싸에서 최근 시위가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소문도 못 들었느냐”며 걱정스레 핀잔을 줬다.

이날 군인들은 역 광장에 한 시간가량 머물렀다. 진홍색 적삼을 걸친 티베트 승려들, 흰색 모자를 쓴 회족(回族) 청년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닝역에서 200m 떨어진 ‘장족(藏族·티베트인) 거리’는 겉보기에는 한산했다. 그러나 티베트인과 회족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뭔가 수군거리는 광경이 여기저기에서 목격됐다. 시닝 시민들 사이에선 라싸 시위 여파가 칭하이성의 장족 자치주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한 택시기사는 “궈뤄(果洛)·황난(黃南) 등 장족 자치주 여러 곳에서 시위가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란저우에서 군인들이 파견된 것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는 “최근 시닝 외곽도로에서 무장경찰을 실은 트럭이 공격을 당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현재 칭하이성에는 6개의 장족 자치주(州)가 설치돼 있다. 티베트인 거주자는 110만 명에 이른다. 시닝(칭하이성)에서

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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