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백기 든 ‘24시간 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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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땅땅-.”

18일 오후 2시30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박주웅 서울시의회 의장이 ‘학원 24시간 영업허용 백지화’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현재 오후 10시로 제한돼 있는 학원영업 시간을 자율화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두고 벌어졌던 소동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회의장에 있던 서울시의원 89명(전체 의원수는 105명)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규제를 철폐한답시고 학원 24시간 영업을 허용하려던 계획이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간 데 대한 자괴감도 있는 듯했다. A의원은 “교육자율을 빌미로 학원만 배불린다”거나 “학원을 24시간 편의점처럼 만들 작정이냐”는 비난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12일 문제의 조례안을 통과시켰던 시의회 교육문화상임위 정연희 위원장은 “밤 새워 공부하다 죽은 학생이 있느냐”며 여전히 ‘24시간 허용’을 주장했다. B의원은 “학원영업이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돼 있어 학생과 학부모가 범법자가 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일단 여론의 뭇매나 피하고 보자’는 의원들이 여전한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지원되는 예산이나 교육 관련 같은 많은 조례 제정권을 갖고 있다. 올해 서울시교육청 예산은 6조1574억원이다. 이 가운데 36.6%인 2조2500억원은 서울시가 댄다. 학원 영업이나 초·중·고 책상 교체, 시설 현대화 같은 것도 모두 시의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 예산을 잘 썼는지 감시도 철저히 해야 한다. 중요한 일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의회는 이명박 정부가 ‘교육자율’ 정책을 밝히자 ‘학원 영업자율’부터 들고 나왔다.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대책을 마련할 것을 시교육청에 주문하는 일도 시급한데 학원에 생색내는 일부터 손을 댄 것이다.

물론 학원 영업 제한이 유명무실하고 심야 강의에 대한 학원들의 수강료 탈세·탈루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단속이 안 되는지, 대책은 뭔지’부터 짚어봤어야 하는 게 순리 아닌가. 서울시의회는 ‘학원 24시간 영업’ 소동을 계기로 본연의 기능이 뭔지를 살펴 보길 바란다. 일방적인 ‘탁상 의결’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울 시민들이 본다.

민동기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