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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있는요리>황태 신선로-한정식집 운영 정연정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정통 서울식 반가(班家)음식 만들기엔 선수라는 정연정(44.
서울강남구삼성동 차관아파트)씨를 만나기위해 찾아간곳은 압구정동로데오거리였다.양반가문.전통 등의말을 떠올리는 자체가 무색하게느껴지는 이곳에서 세계화 열풍속에 전통을 고수한다는게 쉽지않을성싶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저 스스로 시계바늘을 구한말로 되돌려 놓을 때가 많아요.』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가 스물일곱의 나이로 시집간 시댁은 구한말 명문가로 꼽히는 충정공 민영환의 외손가였다.지금도 정정하게 살아계시며 외손자며느리에게 사랑을 듬뿍 나눠주시는 시외할머니(93)는 충정공의 따님,그를 둘째 며느리로 맞아들인 시어머니(68)는 충정공의 외손녀였다.
매서운 시집살이라 분가해 살아도 엄격한 시집의 법도를 익히기란 햇병아리 새댁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한지 약 3년간은 오로지 파 다듬고 마늘까는 정도밖에 할수 없을 정도로 전통 서울 양반가의 음식은 정갈하고 까다롭기만했다. 민어로 포를 뜬뒤 그위에 섭산적을 얹어 석쇠에서 굽는 민어구이라든지,절인 오이에 끓인 간장을 계속해 부어 만드는 오이숙(熟)장아찌,직접 양지머리를 눌러 만드는 편육 등 거의 대부분이 처음보는 음식들이었다.
깔끔한 성격만큼이나 솜씨가 빼어났던 시어머니는 이번엔 전,이번엔 너비아니 식으로 하나하나씩 요리 만드는 법을 며느리에게 전수해주셨다.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인 황태신선로 또한 이렇게 해서 익힌 요리 중의 하나.아까운 솜씨를 맛볼 수 있게 해달라는 주위의 요청에 아예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최근 「녹수」라는 한정식집을 차린 그는 이 식당의 자신있는 메뉴로 황태신선 로를 내놓았다.아직도 시어머니로부터는 흡족한 칭찬을 못들을만큼 미숙하다고겸손해하지만 그는 외국문물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는 로데오 거리에서 굳건히 우리 음식을 지켜갈 것이란다.
〈文敬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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