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쟁점과흐름>5.분단체제론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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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분단체제론은 체계화되고 완성된 하나의 이론이기보다는,비판적이고 열린 지성의 인문과학자가 사회과학계에 던진「화두」라는 느낌이 든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교수가 백낙청(서울대 영문과)교수의「분단체제론」을 평가한 말이다.당시 이 논쟁은「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는 문예비평가와 경험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사회과학자의 논쟁」으로 관객들(?)에게 비쳐졌다. 두사람 사이의 논쟁은 백교수가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92년 겨울호에「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란 글을 발표하고,이글을 읽은 손교수가「분단체제론의 비판적 고찰」(창비94년 여름호)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창비94년 가을호에 백교수의반론이 실린데 이어 그해 겨울호에는 손교수의 재반론이 게재됐다. 이러한 논쟁과정에서 드러난 백교수 주장의 핵심은▲분단이 고착화돼 변화가능성이 제한된 현실에서「정치적 현실주의」에 입각해「통일」과「민주화」는 근본적으로 재평가돼야한다는 것▲남북을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체제 대립의 관계로 파악하기보다 는 권력 혹은 국가간의 경쟁관계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등 두가지 내용으로요약할 수 있다.
이런 인식,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는『냉전시대의 사회주의도 사실상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한 구성부분에 불과했다』고 보는 월레스타인의「세계체제론」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다.따라서 남북분단체제는 남과 북 사이의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모순적 체제이기보다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로 파악된다.
논쟁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모아졌다.다시말해 분단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모순적 체제로 볼 것인가,아니면 자본주의세계체제아래의 단순한 국가간 경쟁관계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손교수는 남북한 분단체제아래서 서로 공유하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두 사회의 체제적 모순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왜냐하면「분단체제론」이 남북사이를 사회주의-자본주의라는 사회구성체간의 대립으로 파악하지 않고 통일을 전제로 한「두 개의 서로 다른 국가 혹은 국가권력 간의 대립」으로 파악할 때,변혁운동 내부에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손교수는「분단체제」라는 개념을 느슨한 문예비평적 의미를 넘어 사회과학적 개념으 로 사용할 경우 작위적인 「개념의 폭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많은 사람들은 백교수가 80년대 통일론의 추상성을 넘어 이론에 구체성을 띰으로써 논의를 한층 진전시킬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모든 현실주의가 그러하듯 백교수의 논의가 새로운 실천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단순한 이론적 비관주 의에 그칠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金蒼浩 本社전문기자.哲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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