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長.次官이 韓藥분쟁동네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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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민보건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심각한 속병을 앓고 있다.
병명(病名)은 최근 장.차관의 인사 쇼크에서 비롯된 급성 사기저하증.
특단의 사기진작책이 없으면 만성무력증세로 발전할 것이라는 진단이 이미 나와 있다.
2~3일전 일부 언론에 한약분쟁 문책으로 차관이 경질된다고 보도되자 복지부 공무원들은 실어증 초기환자들처럼 보였다.
지난 1일부터 신임차관이 외부에서 들어온다고 알려진 뒤에는 아주 등을 돌리고 앉아버린 모습들이었다.
한 사무관은 『장관이 보름전에 책임을 졌으면 그만이지,왜 차관까지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래서야 누가 어떻게 소신을 갖고 일을 하겠느냐』는 탄식도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복지부 공무원들은 이번 장.차관의 경질이 약사회와 한의사회의로비에서 비롯됐다는 「믿기 싫은」추측에 가장 괴로워하고 있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서상목(徐相穆)前장관은 약사들이 장관퇴진을 주장하는 격문을 약국에 내붙이고 정치권등에 로비,사의를 표명한 徐장관을 물러나게 했다고 한다.또 주경식(朱京植)차관은행정고시출신임에도 약사라는 이유로 한의사들의 표 적이 된 게 퇴진배경이라는 소문이다.
『약사회에서 물고 늘어지면 장관이 날아가고 한의사회가 운동을하면 차관이 갈린다면 도대체 우리의 자존심은 뭐냐』고 한 말단직원은 분개했다.
이해집단의 집단이기주의에 휘말려 자신들의 꿈이랄 수 있는 장.차관이 바뀔 정도라면 더이상 자신들의 존재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복지부 내부에는 『제갈공명이 와도 한약분쟁문제를 풀기는 어렵다』는 말이 회자(膾炙)된지 오래다.한약분쟁은 본질적으로 제로섬(Zero Sum)의 밥그릇 싸움이기 때문에 한발짝이라도 움직이는 한 반발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복지부에서는 이번 장.차관 인사로 한약분쟁이 더 꼬여갈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분쟁의 당사자들이 이번 인사로 자신들의 힘을 확인했기 때문에 타협과 양보를 하기가 더 어려울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난 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후보는 의료.복지개혁을 이슈화하는데 성공,무명상태에서 「걸프전의 지도자」부시를간단히 따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삶의 질」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만큼 복지부업무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바람타지 않고,전문성 있고,소신 있는 보건복지행정의 기틀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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