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물>6월-街人 김병로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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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초대 대법원장으로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진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선생이 문화체육부에 의해 6월의문화인물로 선정됐다.
선생은 한학을 포함,높은 경지의 학문과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로 9년3개월동안 사법부 수장으로 재직하면서 모든 외압과 간섭을 물리쳐 「법조인의 사표」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
전북순창이 고향인 선생은 17세때 한말 거유인 전우(田愚)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운뒤 담양 일신(日新)학교에서 서양인 선교사에게 신학문을 익혔다.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日本).메이지(明治)大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선생은 경성법학전문학교의 전신인 경성전수학교와 보성법률상업학교(보성전문의 전신)에서 형법과 소송법강의를 맡았으며 한때 부산지법 밀양지원 판사로 재직 하기도 했다. 1920년 경성지법 소속 변호사로 개업한 선생은 23년 형사공동연구회를 창설,소작쟁의.노동쟁의등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안창호.여운형의 치안유지법 위반사건을 비롯해 6.10만세사건,광주학생운동사건등 주로 애국운동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변론을무료로 담당했으며 27년 신간회에 참여,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선생은 해방후 한민당 중앙감찰위원장,남조선 과도정부 사법부장등을 거쳐 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대법원장으로 사법부의 초석을 다지는데 혼신을 다 바쳤다.
57년 정년 퇴임한 선생은 정치에 뛰어들어 63년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냈으며 국민의 당 창당에 참여해 윤보선.허정과 함께 야당통합과 대통령후보 단일화를 위한 조정작업등 활약을 벌이다 64년 77세를 일기로 운명했다.55년 고려 대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63년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받았다.선생을 추모하는 행사는 다음과 같다.▲추모강연회=12일오전10시 서울서초동법원청사 대강당,법원행정처▲기념강연회및 백일장=16일오전10시순천중앙국교,순천문화원 李晩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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