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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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31) 이미 골목입구에서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징용공 둘이 대창에 찔려 꼬꾸라진 뒤였다.다만 거센 빗소리 때문에 마당에 서 있던 징용공들은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쫓겨들어온 사내가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전부 나와라.왜놈들이 쳐들어온다.』 동필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마당에서 타오르고 있는 화톳불을 바라보고 있었다.빗발이 이렇게 점점 굵어져서는 저 불도 바로 꺼지겠구나.그런 생각을 하며 빗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닦던 동필은 담장이 넘어지듯 마당으로 들이닥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쏟아져 들어오는 한덩어리의 어둠처럼 바라보았다.
도망칠 사이도,맞서 싸울 여유도 없었다.몸을 돌릴 겨를도 없이 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은 들이닥친 일본인들이 휘두르는 대창에 다리를 맞으며 픽픽 쓰러져갔다.이어서 총소리가 빗발을 뚫고허공에 울렸다.고함소리가 마당을 뒤덮었다.
『반항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들고 있는 물건은 전부버려라.』 『모두들 땅에 엎드려라.』 순간적인 기습에 놀란 채징용공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몸을 웅크렸다.그렇게 엎드린 목덜미를 빗발이 때리고 일본인들의 대창이 등어리를 갈기며 지나갔다. 화톳불 옆으로 징용공들을 몰아놓는 사이 대창을 든 일본인들은 숙사를 둘러쌌다.
『집안에 있는 자들은 일렬로 서서 밖으로 나와라.손을 머리에얹고 일렬로 나와라.』 빗물에 불이 꺼지면서 화톳불 한쪽이 뿌지지지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렸다.불꽃이 날아올랐다.누가 불을 껐는지 숙사는 캄캄했다.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손을 등뒤로 묶인 채 화톳불 가에 무릎이 꿇려 있던 종길이가 버둥거리며 일어섰다.
『오려면 진작에 올 것이지,개패듯 얻어맞은 다음에 올건 뭐야.』 순간,징용공들을 둘러싸고 있던 일본인들이 다짜고짜 그를 향해 대창을 휘둘러댔다.비명을 지르며 종길이가 나자빠졌다.
『나라구 나.』 종길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그것이 신호이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종길이의 몸을 일본인들의 대창이 두들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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