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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한국현대사>24<스티코프비망록>전문가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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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中央日報 현대사연구소가 최근 러시아에서 발굴한『스티코프비망록』1부연재가 끝났다.비망록을 통해 해방정국의 감추어진 역사적 진실이 새로 밝혀지자 학계는 『현대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됐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당시를 체험했던 독자들 도 『이제야모든 것이 사실대로 밝혀지는구나』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관련 학계와 독자들에게 준 충격이 너무 컸기에 자료의 가치에 대해 검증작업을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註] 사회:中央日報 현대사연구소가 7개월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끝에 발굴한『스티코프비망록』이 6회에 걸쳐 소개됐습니다.연재중 관련연구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서 수많은 격려전화가 걸려왔고,가능한 한 빨리 비망록 전체를 번역해 출간하라는요청이 쇄도해 비망록에 쏟는 관심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있었습니다.선생님들께서 이 비망록이 어느 정도의 자료적 가치가있는지 먼저 개괄적인 평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沈교수:우선 시기적으로 볼 때 이 비망록은 1946년 9월부터 47년 2월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이 시기는 제1차 美蘇공동위원회가 무기 휴회되면서 국내외 정국이 극도로 혼미스럽던 시기죠.이를테면 남한의 우익진영에서는 이승만(李承晩 )박사와 한국민주당이 주축이 돼 자율정부수립운동을 전개했고,중도진영은 김규식(金奎植)과 여운형(呂運亨)을 중심으로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했습니다.좌익진영은 美蘇공위를 재개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면서3당합당을 추진했고,북한에서는 소비에 트화를 위한 제반 조치가취해져 공산당의 지배가 확고해진 상태였죠.바로『스티코프비망록』은 남북한 내에서 일어났던 이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올바로 규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崔교수:저는 자료의 가치 여부를 논하기 전에 먼저 사실 인식의 문제와 사실 해석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제가 말하는 사실인식의 문제란 사실 확인의 문제고,사실 해석의 문제란 확인된 사실을 토대로 해석 내지 평 가하는 것을말하죠.여기에서 인식의 문제가 제일 중요해요.인식의 문제는 합의도가 매우 높죠.1차자료가 나와 판명이 되면 입장의 차이에도불구하고 합의에 도달하기 쉬운 것이 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다음이 해석의 문제인데,여기에는 아무래도 해석자의 세계관이나역사관이 들어가게 마련이죠.지금까지는 1차자료가 결여돼 사실 인식 또는 사실 확인이 희미한 상태에서 해석과 평가만이 난무했죠.그런 점에서 이번『스티코프비망록』은 사실 인식.사실 확인의합의도를 높이는데 가위 결정적 의미를 지닌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都교수:비망록에는 당시 북한의 소련군지도부가 남한내의 정세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고 상황전개에 따라 남한의 좌익진영에 지시를 내린 사실들이 많이 발견됩니다.지금까지 상층부의 지도나지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중적 불만이나 의지의 표출에 초점을 맞춰 당시 대중운동을 서술한 일부 기존의 연구는 수정돼야 할 것같아요.
사회:이제부터는 각론부분에 대해 말씀을 나누죠.46년 해방정국을 뒤흔들어놓았던 9월총파업과 10월폭동,3당합당,좌우합작 등에 대해 비망록에서 새로 밝혀진 사실들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沈교수:우선 좌우합작의 경우 소련이 추진을 강력히 반대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죠.10월폭동때 소련이 자금지원 등을 한 것도 새로 드러난 사실이죠.또 그 당시 제기된 각종 구호라든지 전술이 스티코프의 직접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 도 주목할 만합니다.3당합당의 경우 지도부 구성을 소련군책임자.김일성(金日成).박헌영(朴憲永) 3자가 합의해서 결정한 점도 새롭구요.박헌영이 수시로 소련군당국자에게 제반 문제에 대한 자문이나지시를 구함으로써 남로당이 소련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 움직였음이 새로 확인됐죠.이렇게 볼 때 좌익진영은 북한 주둔 소련군당국자의 지시나 전략에 따라 활동한 측면이 상당히 강합니다.
都교수:당시 남한의 좌익지도부가 중요한 사항을 매번 보고하고소련측이 일정한 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비망록을 통해 확인한 것은 큰 성과입니다.또 제가 전혀 모르던 부분인데 비망록에서 새로 안 사실은 박헌영이 월북한 직후인 46년 1 2월 남로당과북로당의 연합중앙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것입니다.이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김일성과 박헌영 사이에 대결 내지 경쟁이 본격화된 것으로 봐야 할 것같아요.이 대목을 보면서 두사람간의 경쟁은 상당히 일찍 시작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崔교수:자료의 가치와 자료에 대한 해석을 연결하는 고리와 관련해서 하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요.1차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린 연구의 결론들은 대개 두가지였죠.하나는 냉전적 단정이에요.여기에는 반공적 입장이나 좌파적 입 장과 같은 본인의 희망적 관측이 들어가죠.이 경우 1차자료에 의한 검증은거의 고려하지 않고 먼저 결론이 나와 있어요.또 하나는 학문적추측,그러니까 1차자료는 아니지만 제한된 모든 자료를 섭렵하면서 추론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리 는 경우죠.그런데 이번 자료의 발굴로 전자의 입장에서 결론을 내리는 쪽이 유리한 고지에서게 됐어요.그렇다고 해서 전자가 전적으로 옳다고 얘기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문제가 있죠.1차자료로서의 중요성을 인정하되 약간의 사료비판을 가하면 서 지금까지 주장돼온 학설이나 연구 결과를 수정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요.그것과 관련해서 10월폭동에는 자발적 계기가 반드시 있었다고 봅니다.예컨대 밑으로부터의 불만과 전국적인 좌익조직화라고 하는 부분이 엄연히 존재했고,거기 에 소련측의 개입이라는 또다른 측면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사회:이번 비망록을 통해 전전(戰前)볼셰비키로서의 박헌영의 면모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崔교수:비망록이 그 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메시지를 준 것같아요.박헌영은 확실히 전전 볼셰비키입니다.전전 볼셰비키의 행동양식은 공산당의 본부인 코민테른의 지시만을 따른다는 것이죠.이를 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요.이것이 바로 전전 볼셰비키의 행동의 한계이자 본령이죠.1920년 이래 쭉 그래왔고 심지어 蘇군정기에도 이같은 행동양식이 그대로 견지되었죠.그것이 이자료에서 확인된 것은 대단히 의미가 큽니다.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沈교수:박헌영이 전전 볼셰비키로서 코민테른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랐다는것은 이번에 분명히 드러났죠.아까 都교수께서 지적했지만 박헌영이 월북하고 나서 김일성과 박헌영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는 점은 매우 흥미롭더군요.
都교수: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비망록에는 박헌영과 남로당 지도부의 전전 볼셰비키로서의 행동양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또 좌익세력이 앞다투어 소련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하는 모습도 묘사돼있더군요.
사회:비망록에서 밝혀진 북한사회상도 주목할 만하지 않습니까.
沈교수:증언을 통해 알려진 소련측의 북한으로부터의 물자 반출이 사료로 입증된 것은 큰 의미가 있죠.북한주민에 대한 소련군의 난폭.약탈행위가 확인된 점도 기왕의 냉전적 시각이 아니더라도 사실적 차원에서 중요하죠.
都교수:中央日報社가 자료의 가치에 대한 검증을 학술적으로 걸러보려는 자세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남북한 현대사를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평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沈교수: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현대사 연구는 세가지차원에서 분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첫째는,남한이나 북한만을따로 떼어 분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죠.상호간에 영향을 미쳤고 또 영향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존립해왔기 때 문이죠.둘째는,국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죠.이런 시각을 갖지 않으면 한반도문제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죠.마지막으로 그 당시 우익진영이 친미적(親美的)인 데 비해 좌익진영은독자적이었다는 그런 식의 편견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봐요.좌익진영도 우익진영 못지않게 대외 의존적이고 종속적이라는 사실이 이번 비망록에서 드러났잖아요.
사회: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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