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워치] 궈메이의 가격 감동 “같은 제품 최소 20% 싸게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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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메이의 저가 비결

# 사진 찍을 때 미국인은 “치즈-”, 한국인은 “김치-”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인은? 상하이인들은 “첸(錢: 돈)-”을 외친다.

# 자판기 영업이 안 되고 전자금융 시대에 오히려 전당포가 유행한다. 황금을 초박막(超薄膜: 아주 얇은 막)으로 만들어 먹는다.

모두 중국적인 현상이다. 사진 찍을 때 웃는 표정을 짓게 하기 위해 ‘돈’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자판기 문화는 돈만 먹고 상품을 내놓지 않을까 봐 자리를 잡지 못한다. 전당포는 물건과 현금이 눈앞에서 오가는 장소이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 그런가 하면 황금을 얇게 썰어 먹을 만큼 황금에 진한 애정을 보인다. 중국인다운 현금 사랑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속담도 남다르다. “돈은 귀신으로 하여금 맷돌도 돌리게 한다(錢能使鬼推磨).” 중국대륙 이곳저곳을 떠돌던 객가(客家)들이 즐겨 사용했던 속언이다. 춤을 추게 하는 것도 어려운데 맷돌을 돌린다고? 역시 돈의 가치를 가장 높게 인정해 주는 중국인다운 믿음이다.

이런 중국인들이 빚어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현금을 두고 벌이는 ‘전(錢)의 전쟁’은 세계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대표적인 게 가전제품의 유통 판매 현장이다. 중국인들은 매주 금요일이면 신문을 유심히 살핀다. 가전제품 광고를 보기 위해서다.

‘1만 위안(약 130만원)짜리를 5000위안에 50대 한정 판매’ ‘바오자(暴價:폭탄 할인) 999.50위안’ ‘개업 1주년 특별 할인’ 등. 빽빽이 들어찬 광고를 보고 사람들은 가게로 몰린다. 단 1위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함이다.

한 지역에 어떤 회사의 유통점이 세워지면 다른 회사 가게는 바로 그 옆에 들어선다. 둘은 살아남는 자로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출혈 경쟁을 벌인다. 가전제품 유통업계에서 현재 중국 최강으로 군림하는 궈메이(國美:Gome)의 황광위(黃光裕·39·사진) 회장은 이 바닥에서 신화를 일궈낸 인물이다.

2004년 황 회장은 중국 최고의 갑부 반열에 올랐다. 멀리 광둥(廣東)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온 지 20년 만이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가격 전쟁의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평가를 달리 표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궈메이가 저가(低價) 전략으로 시장을 개척했다는 건 부분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저가 판매는 의도적·악의적으로 가격 전쟁을 일으켜 경쟁사를 거꾸러뜨리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손님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손님을 위할 수 있을까 하는 일념에서 나왔다. 난 이것이 진짜 ‘가격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돈 4000위안(약 52만원)을 갖고 상경해 20년 만에 최고 갑부 대열에 섰다는 사실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현재 재산은 450억 위안(약 5조8500억원)이다. 매년 중국 부호 랭킹을 매기는 후룬(胡潤)에 따르면 황광위는 중국의 넷째 부자다.

그의 과거를 보자. 1969년생인 그는 광둥성 산터우(汕頭) 출신이다.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형을 따라 네이멍구(內蒙古)에서 노동을 했다. 1년간의 모진 고생 끝에 4000위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17세이던 86년, 그는 베이징으로 올라와 100㎡ 크기의 구멍가게를 열었다. 궈메이 전기의 첫 탄생이다. 그 후 궈메이는 네 차례에 걸친 대규모 확장을 통해 베이징의 가전제품 소매시장을 석권했다.

궈메이는 출범 10년 동안 줄곧 가격 전쟁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궈메이의 물건은 항상 주변 상가의 같은 제품에 비해 최소한 20% 이상은 쌌다.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음은 물론이다. 현재 궈메이는 전국 67개 도시와 홍콩 등에 30개 지사, 200개 매장, 4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성공이 가능했을까. 황 회장은 원칙부터 얘기했다.

“원칙이 없는 기업은 성공할 수 없다. 소비자가 외면하기 때문이다. 내 원칙은 3가지다. ‘소비자 지상주의, 소매 판매 고수, 박리다매’다. 내가 가전 소매업에 손을 댔을 때 거의 모든 상인은 ‘가격 상승=두툼한 이윤 확보’라는 방식에 매달려 있었다. 나와 형은 이래선 오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익에 대해선 철저했다. “취해야 할 이윤은 반드시 취한다. 그러나 취해선 안 될 이윤은 절대 취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취해서 안 되는 이윤을 취하면 그 이윤이 곧 사라지는 것은 물론, 취해야 할 이윤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그에게 어떻게 저가 판매가 가능했느냐를 물어야 할 차례다.

그는 이 문제를 ‘파이프 이론’으로 설명했다.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흐름을 하나의 파이프로 관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3단계를 가로막았던 중간상이란 존재는 과감하게 걷어냈다. 지금은 일반적인 얘기지만 당시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지난해 말 베이징에서 열린 한 패션쇼에 등장한 ‘런민비(人民幣) 패션’. ‘돈은 귀신으로 하여금 맷돌도 돌리게 한다’는 중국 속담을 연상시키는 의상이다. 중국 기업인들은 단돈 1원이 남아도 기꺼이 사업에 나서며 시장 장악을 위해서는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錢)’을 향한 13억 중국인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중앙포토]

그는 이때부터 발로 뛰었다. 생산자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고, 유통에 필요한 인력과 차량을 마련했다. 매장은 깔끔하게 정리했고, 손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폈다. 물건 대금, 직원 월급은 최소한 하루 전에 지급했다.

자연히 물건 원가가 떨어졌다. 심할 경우 40% 이상 낮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황 회장은 구입가 하락분을 감안해 제품 가격을 최대한 싸게 책정했다. 발로 뛰고, 사람을 설득하고, 이리저리 부탁해 내린 원가 하락의 혜택을 손님에게 돌린 것이다. 손님이 안 몰리는 게 이상한 상황이다.

주변 업체가 흔들렸다. 93년 베이징 내 소매 유통 강자인 궈하오(國豪), 야화(亞華), 헝지(恒基)가 모두 궈메이로 흡수됐다. 99년 궈메이는 마침내 수도 베이징을 벗어났다. 톈진(天津)을 돌파한 뒤 5년 만에 홍콩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전국적인 유통망이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황 회장은 98년 50억 위안의 자본으로 펑룬(鵬潤)투자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이후 금융과 부동산에도 진출했다. 아주 작은 이문도 놓치지 않는 그의 기질, 그리고 똑같은 심리의 소비자를 겨냥하는 저가 전략으로 그룹 건설의 꿈을 이룬 것이다. ‘전(錢)’에 대한 무서운 집착이 일궈낸 결과다.

베이징= 진세근 특파원

중국의 돈 관련 격언들

▶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을 수 있다(人爲財死, 鳥爲食亡)

▶돈은 신과 통한다(錢能通神)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 없으면 절대 안 된다(錢不是萬能的, 沒有錢是萬萬不能的)

▶이익을 위해서는 의를 잊는다(見利忘義)▶돈은 모든 것을 붙이는 아교(錢是萬能膠)

▶돈이 걷는 길은 끝이 없다(錢途無量: 앞날에 발전 있으라는 뜻의 ‘前途無量’을 비튼 것)

▶오로지 돈을 향하라(向錢看: 앞을 내다본다는 뜻의 ‘向前看’을 패러디)

▶오로지 노릴 것은 이익이다(唯利是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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