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요물'이 빚어낸 광풍노도의 대변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1국
[제5보 (84~105)]
白.朴永訓 5단 黑.趙治勳 9단

흑▲로 움직인다.노리던 수다. 좀더 무르익기를 기다려 터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사태가 급박해 이제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구비 요소가 뭔가 부족하지만 趙9단은 결판을 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박영훈의 84가 노타임으로 떨어진다. 85로 끊어도 86이 선수. 모두 예정 코스지만 趙9단은 차거운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는듯 눈을 찡그린다. 단수이니 87은 절대의 한 수. 백은 다시 88로 단수하며 뚫고 나온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백을 어쩌지 못한다. 趙9단은 소매 속에 감춰둔 날이 시퍼런 요도(妖刀)를 꺼낸다. 바로 89로 인해 만들어지는 '패'라는 요물이다.

박영훈도 알고 있다. 관전 중인 프로들도 알고 있다. 89엔 90으로 나가는 수뿐이며(만약 '참고도' 백1로 따냈다가는 흑2의 회돌이 축에 걸린다) 이때 91로 몰아 패가 된다는 것을. 그러나 모두의 마음은 점점 흥분으로 고조되고 있다. 광풍노도 속에서 대변화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패는 조금 전 벌어졌던 하변의 패와는 등급이 다르다. 이 패는 천지대패며 백이 지는 날엔 좌하 대마가 사경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팻감이다. 趙9단이 93에 패를 쓴 다음 94로 따냈으나 백엔 아직 96으로 뻗는 수가 있다. 백은 이 패를 질 수 없다. 그러므로 어차피 다음엔 만패불청이다. 그러나 그 전에 101의 악수는 받아내야 한다.

103에 단수하자 104로 불청하고 105 빵 따냈다. 무려 50수에 이르는 혈투가 종료되고 광풍도 멎었다. 과연 흑은 그 오랜 고투속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