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도전! 4人4色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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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한번쯤은 확~ 바꿔 보고 싶어지는 봄이 왔다. 계절은 석 달이 멀다하고 달라지는데 우리네 인생행로는 어찌 그리 한결같은지…. 영영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이 봄에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인생역전이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축구선수에서 변호사가 되고, 정년퇴임 후 새로운 직업과 함께 새 인생을 찾는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다가 돌연 여군이 된 사람도 있다.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인생이 달라지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축구선수에서 변호사로 터닝슛
나를 찼다 또다른 나를 찾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단 한 번의 인생을 몇 개라도 되는 듯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을 향해 앞 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잦은 실패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끈기와 자기믿음-. 평범한 인생살이를 마냥 반복하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다.
 
파벳도 모르던 축구선수, 변호사 되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자기이름 석자도 영어로 잘 쓰지 못했다. 대소문자 구별을 못해 왜 영어 알파벳 크기가 제각각인지 의아했을 정도다. “더치 페이하자”는 친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머뭇거렸고, ‘Good Morning’이라는 간단한 단어조차 대학에 와서 처음 써봤다. 축구특기생으로 홍익대 건축과에 입학할 때까지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지금은 어엿한 변호사가 된 이중재(34)씨 이야기다.
 대학 입학 당시 축구만 열심히 해도 앞길이 열릴 정도로 축구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대학 1학년 때 예기치 못한 발목 부상을 입는다. 인생 스케줄에 확~ 제동이 걸린 것이다. 얼핏 역동적이던 그의 삶이 끝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축구보다 더 다이나믹한 그의 인생 2막이 펼쳐진다.
 “남들 다 보는 것을 저만 못 보고 사는 느낌이었어요. 그저 축구가 좋아서 축구만 하고 살았는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일반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내가 이거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축구도 할 수 없고, 평범한 학생이 되기도 힘들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오기가 생겼죠. 열등감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으니까요.”
 발목 부상은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죽을 각오로 공부에 매달렸다. 2000년 1월, 군 제대 후 무작정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가 산을 정복하듯 책을 팠다. 4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고, 2002년에는 법무사시험까지 수석으로 합격했다. 평소 앞서 걸어가는 사람을 눈 뜨고 못 볼 정도의 승부욕도 한 몫 했다.
 공부하는 중간 중간 좌절도 많았다. 공부라곤 안 해본 그에게는 단어 하나하나도 새로움이었다. 우리말도 외국어 같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을 백지 상태의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그런 무모함이 성실과 인내로 이어졌다.
 
조건 재미있는 것을 하라
그렇다고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한 건 아니다. 공부는 하고 싶을 때만 집중적으로 했다. 하루 7~8시간 이상 공부하면 지겨워져서 나머지 시간에는 운동이나 컴퓨터 게임을 했다. 그렇지만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리고 2004년, 고대하던 사법고시에 당당히 합격했다.
 얼핏 평범한 사람은 근접하기 힘든 수재의 인생역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남들보다 머리가 좋거나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자랐으면 모자랐다. 고등학교 성적을 ‘양·가’ 로 가득 채웠던 그가 공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생각해 보면 전 늘 재미있는 것에만 몰두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축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고, 막상 공부를 시작해서는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죠. 하나가 재미있으면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에 미쳤어요. 어떤 것이 됐든 정말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하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큼은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생기는 크고 작은 시련은 국물 맛을 진하게 하는 양념 같은 것일지도 모르죠”
 인생이란 잘 짜여진 기차 시각표가 아닐 지도 모른다. 몇 살에 학교를 졸업하고, 몇 살에는 직장을 얻고, 또 몇 살쯤에는 결혼이나 승진을 하는 등 고정된 스케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소설가 김훈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했다지만 밥벌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평범한 사람들, 하고 싶은 밥벌이를 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가 인생의 행불행을 결정할 수도 있다. 봄이 되면 저 들녘에 없던 풀도 돋아나는데 우리가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프리미엄 이송이 기자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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