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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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26)화톳불 앞에 종길이를 묶어서 꿇어 앉히고 사람들이 둘러섰다.
손에 든 몽둥이로 종길이의 어깨를 쑤시면서 상식이가 앞으로 나섰다. 『부잣집 마님께서 머슴 배고픈 걸 아실 리가 있나.그래,왜놈들 사타구니나 긁어주면서 사신 재미가 어떠셨나?』 『왜,왜들 이러는 거야? 이건 뭐가 잘못됐다구.내가 아냐! 나는 아니라구!』 『뭐가 너는 아니라는 거냐?』 『노무계랑 다리놓고서,그렇지 그러고 일러바치며 다닌 건 내가 아니라구.』 『누가너보고 그랬다던?』 『그게 아니면 왜 날 묶고 도리깨질을 하려는 거야?』 덩치 큰 사내가 앞으로 나서면서 소리쳤다.
『이놈이 제 죄를 제가 안다.』 앞 사람을 밀치며 뛰어나온 사람들이 풀썩풀썩 먼지를 일으키며 종길이에게 달려들었다.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밟혀가는 종길이의 비명이 터져나왔다.화톳불이우수수 무너지면서 불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기 한놈 또 있다.』 숙사 쪽에서 소리치며 어지럽게 뛰어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밧줄로 묶인 사내를 앞세우고 우루루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오성이였다.
등짝이 밀려서 종길이가 늘씬하게 짓밟히고 있는 흙바닥에 오성이의 몸이 나뒹굴었다.사람들이 둘을 둘러쌌다.겨우 사람들 발밑에서 풀려난 종길이가 흙투성이에 코피가 흐르는 얼굴을 들었다.
피묻은 침을 내뱉으며 그가 소리쳤다.
『생사람 잡지 말어.날 찍은 놈이 누군지,어디 두고보자!』 『이놈이 죽어도 짹이네.』 『부처님 보고 생선을 먹었다지 내가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해.자네들 날 이렇게 해도 되는 거여?』 『터진 아가리로 말은 잘 한다.그래라.짖어 봐라.흉년에 밥 빌어먹으라고 뚫어놓은 구멍은 아니니까,할말 다하고 죽은 놈은 염할 때 때깔도 좋다더라.』 오성이 앞으로 다가간 청년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젖혔다.
『얼굴은 빤질빤질해 가지고,이런 놈을 두고 바로,비단바지에 똥 싼다고 하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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