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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워치] 변신·창조 ‘손오공 DNA’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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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수한 요괴(妖怪)를 만날 때 그는 때론 개구리로, 때론 뱀으로, 혹은 독수리로 변한다. 상대보다 강한 존재로 변신해야 적을 이길 수 있다. 따라서 손오공에게 있어 변화와 대응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서유기(西遊記)』 속의 손오공은 중국인의 일반적 심성을 지배했던 대작이다. 그 손오공이 펼쳐 보이는 변신과 창조의 능력은 일반 중국인의 사고와 감성에 숨어 있는 가장 큰 문화적 코드다.

중국 기업인들은 영락없는 손오공의 후계자들이다. 잘나가던 방직업체에서 느닷없이 전자레인지 제조업체로 방향을 바꾼 거란스가 대표적인 예다.


5일 오후 중국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 순더(順德)구. 세계 최대 전자레인지 생산업체인 거란스의 정문을 들어서니 표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우수에서 탁월로(從優秀到卓越)’. 위야오창(兪堯昌) 부총재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우수해선 안 되고 탁월해야만 일류기업이 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 중”이라는 말과 함께.

회사명도 거란스(Galanz:중국명 格蘭仕)로 바꿨다. 이는 원래 프랑스 요트 이름이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는 요트의 항해술을 본받자는 뜻에서였다. 부장급 이상은 연중 무휴로 일했고, 경영진은 미·일을 오가며 경영 효율화를 배웠다. 변신 3년 뒤인 1998년 거란스는 세계시장에 600만 대를 팔며 세계 최대의 전자레인지 업체로 등극했다.

변화에 대한 강박관념이 눈길을 끈다. 이 회사 선인펑(申銀鳳) 기획부장은 회사의 변신을 운명으로 돌린다. 50만㎡의 공장 부지가 주장(珠江)을 등지고 배수진을 치고 있는 데서 보이듯 생존을 위해선 부단한 변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78년 량칭더(梁慶德) 회장이 공장 부지를 고르며 강가를 고집했을 때 주위에선 홍수의 위험을 들며 말렸다. 그러자 량 회장은 “배수진을 쳐야 나와 직원들이 나태하지 않고, 변신하고 혁신하며 또 창조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직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60여 종의 브랜드가 생산되는 공장 4층. 100여m가 넘는 5개 라인 위로 ‘단결·결사항쟁·실용·변혁·창조·속도’라는 표어가 보인다. 6개 구호 중 2개가 변화를 강조한다. 관리부 직원 다이야핑(戴亞平)은 생활가전 부문의 올해 모토가 ‘취안신취안이(全新全異)’ 라고 답한다. 모두 새롭고, 모두 다르게 변해보자는 의미다.

포산(광둥성)=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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