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청년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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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독일 청년 막스 코플러(30·사진)에게 한국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2003년 주독일 한국 대사관이 ‘한국 가요 경연 대회’를 연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갑자기 한국 음악에 끌리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한국이라면 분단국가라는 것 정도만 알았다. 한국 가요 음반들을 구해 들어본 그는 이내 산울림과 한대수의 열렬한 팬이 되어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2004년에 한국을 찾은 그는 ‘독일인이 부르는 한국 가곡의 밤’ 행사에서 산울림의 ‘아니 벌써’와 한대수의 ‘바람과 나’를 열창했다. 그가 노래하는 영상은 2006년 국내 인터넷에서 인기UCC(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트) 1위에 올랐다. UCC 인기에 힘입어 독일에서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엔 첫 정규 앨범인 ‘타부(Taboo)’를 출시했다. 그런 그가 지난주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필립 욈케 기자도 동행했다. 욈케 기자는 “한국 노래를 부르는 독일 가수라는 점과 독일 사람으로 한국에 대단한 애정을 가졌다는 점이 독특해 그를 면밀히 취재하기 위해 동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연 일정 사이 짬을 내 판문점도 다녀왔다. 판문점에서 서울로 돌아온 저녁, 그를 만났다.

-판문점은 어땠나.

“통일전망대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보고 가슴에서 뭔가 북받쳐 올랐다. 지난해 12월 베를린장벽 기념관 개관 행사에 참가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기 때문에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판문점에서 조금 더 북한 쪽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북한 군인이 제지했다. 분단의 뭔지를 느낀 소중한 기회였다. 어렵겠지만 한민족이니 반드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에선 통일의 기쁨을 누리지 않았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아버지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통일 뒤 가족이 동독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온통 회색에 무너지기 직전의 낡은 건물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독일에서 갑작스런 통일로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분단이라는 차가운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거다. 왜 잘못된 걸 그대로 놔두나.”

-김창완과 한대수를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했는데.

“두 분 다 절망을 노래하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아픔을 흥으로 표현한 음악성이 존경스럽다. 한대수 선생님은 서양의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아쉽게도 아직 두 분을 만나 뵐 기회가 없었다. 언젠가 꼭 만나서 그들의 음악에 경의를 표하고, 독일로 초청해서 함께 공연도 하고 파티도 열고 싶다.”

-한국어가 아직은 유창하지 않은데, 한국어 가사 전달에 문제는 없나.

“그런 문제가 있긴 하다. 그래서 한국어 과정을 두 번이나 등록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방법은 직접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자연스레 배우는 거라고 느껴 내 방식대로 공부하고 있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반드시 내가 부르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를 숙지한다. 음악 자체가 국제적 언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한국 음악은 얼마나 알려져 있나.

“사실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더 많이 전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나를 좋아해준 한국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에 매우 놀랐고, 기뻤다. 곧 다시 오고 싶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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