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평화협정.고위급회담 평양개최 제의 속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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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위급회담을 수용한 북한이 北-美간 평화협정 체결공세를 크게강화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北-美간 평화협정 체결주장은 북한이 지난 73년부터 계속해온것이지만 韓美 양국은 남북한이 당사자가 돼 처리할 문제라는 입장 아래 북한의 주장을 묵살해온 사안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北-美간 평화협정 체결주장을 부쩍 강화해왔으며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동의한 직후 목청을 더욱 돋우고 있다. 3일 열린 판문점 정전위 비서장회의에서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북한측 지역에 남측 중립국감독위원을 포함한 정전위원회 관련자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통보하는 한편 한성렬(韓成烈)유엔대표부 공사가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 뷰에서 고위급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본격 거론할 계획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앞서 북한은 고위급회담 재개에 동의하는 서한에서 회담장소를 평양으로 하자는 제안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이런 행동은 일단 고위급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술적차원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평화협정 문제를 고위급회담의 주의제로 삼는 등 고위급회담이 北-美간 고도의 정치회담이 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전술은 미국이 마치 한국의 대리인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었던 경수로회담의 한계를 넘어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미국은 실제로 경수로회담에서 한국형 경수로의 채택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선임을 북한에 분명히 해왔다.고위급회담 장소를 평양으로 하자는 제의도 그 상징성과 함께한국정부가 협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의 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韓美간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따라서 북한은 고위급회담이 열리면 경수로문제 못지않게 평화협정체결 문제를 주의제로 하자는 주장을 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북한의 전술은 그들이 北-美간 협상채널을 단절시키기를원치 않는 한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네바 핵합의 당시 북한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평화협정문제를 의제로 삼자고 주장했으나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문제는 남북한간의 문제라는 입장을 단호하게 견지하자 슬그머니 물러선 바 있다.
평화협정문제에 대한 한국정부 입장이 워낙 민감하고 강력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한국과의 관계악화를 각오하지 않는 한 북한과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논의할 수 없는 입장이다.북한 역시 미국의이같은 입장을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북한의 평화협정 공세는 고위급회담에서 경수로문제,北-美관계 개선 등의 이득을 높이기 위한 협상카드 만들기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康英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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