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장욱진 美展-박정기(호암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장욱진그림은 철저한 개인적 자유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욱진이 창작행위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그림을 「자기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고백」의 방법 또는 수단으로생각했기 때문이다.『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또 나를 드 러내고 발산한다.』-따라서 진실한 자기표현을 위해서는 자유롭지 않으면 안된다.
얽매이는 것이 있으면 작위적이고 위선적으로 되기 쉽기 때문이다.장욱진이 거의 평생동안 30호미만의 작은 그림을 고집한 것은 이와 같은 그의 독특한 회화관과 방법에 기인한 것이다.「규모가 커지면 화면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약해」자유롭게 그릴 수 없고,그만큼 진실성이 결여되며,결과적으로 그림의 밀도와 회화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장욱진의 회화를 본질적으로 특징지우는 아동화적인 조형언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그에게 있어 복잡하고 오랜 논리적 사고는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에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장욱진이 40세때인 1957년에 그린 『나무와 새』는 그의 회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선 어린이의 그림이 흔히 그렇듯이,각각 따로 떨어져 평면적으로 나열된 나무와 새,그리고 그 사이의 반달로 이루어져 있다.그리고 그것들의 형태 역시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사실적인 세부묘사없이 동그라미와 몇개의 단순한 선 으로 돼 있다.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을 대하는 순간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동화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물론 이 그림이 주는 감동은 단지 어린아이의 그림과 같은 구도와 묘사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그것은 또한 뛰어나게 아름답고시적인 색채에서 온다.장욱진은 이점과 관련해 『나의 그림은 빛깔을 통한 내적(內的)고백이며,내 속에서 변형된 미와 자연의 찬미』라고 말한 바 있다.
장욱진은 50년이 넘는 긴 창작생활 속에서 모색과 실험을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특히 그의 후기작인 70~80년대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모티브와 수법이 지배적이어서 얼핏 『나무와 새』가 보여주는 서구적인 취향의 작품과 크게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전 작품을 일별할 때 외관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그 자신의 회화관과 표현방법은 일관되게 유지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독창성과 독자성을 지니면서 언제나 아름다움과 기쁨을 느끼게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