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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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채영은 편지를 다 읽은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채영은비명을 지르며 퉁기듯 일어나 그 고수부지로 달려갔다.그러나 그곳은 평소처럼 파란 강물만 찰랑거리고 사람들만 간간이 지나가고있었다.채영이 한숨 쉬고 일어설 즈음 갑자기 저 멀리서 사람들과 차가 모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채영은 「하느님,제발…」을 부르짖으며 다시 힘껏 달렸다.웅성거리며 둘러싼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니 천으로 덮인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그 사람의 주위에는 물이 흠뻑한게 강물에서 막 끄집어낸 것 같았다.채영은둘러싼 경찰 사이를 기어들어가 그 사람의 얼굴을 씌운 검은 비닐 천을 확 벗겼다.정민수였다.그의 얼굴은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생사를 초월한 듯한 성스러운 표정이었다.채영은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을 수 없어 그를 부둥켜안으려 했으나 이내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채영은 흐느낌을 참을수 없어 한 구석에 주저앉아 마구 울었다.두번째다.나를 목숨걸고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에 의해 버려지는 것이….
이때 채영은 누군가가 자기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그래서 고개를 들어보니 화려한 옷차림의 한 여자가 차갑게 그녀를쏘아보고 있었다.그녀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차가운 빛은 채영의 전신을 짙은 안개처럼 싸고 돌았다.
『서채영씨죠?』 『네… 그런데요.』 『임희경이에요.정민수씨 첫째 부인이죠.』 임희경이 채영에게 손을 내밀었다.엉겁결에 그녀의 손을 잡은 채영의 손목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전율처럼 스쳐 올라왔다.
『그이가 보낸 소포는 잘 받아보셨겠죠? 나머지는 검열이 끝나는대로 곧 보내드리죠』 『네?』 『그럼 안녕.둘째 부인! 우리가 다시 만날 이유는 없겠죠? 당신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히 뒷조사를 했어요.당신들이 만난 것은 최근이고 당신들 사이에는 아직 애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죠.그러니 물론 당신에게 돌아갈 상속 재산도 없구요.
설사 앞으로 애가 태어난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이미 죽은 사람을 가지고 친자감별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임희경은 채영을 다시 한번 매섭게 쏘아보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 버렸다.채영은 찬바람이 도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오싹소름이 끼쳤다.그렇게 정민수를 사랑하고 의존했다는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금세 쌀쌀맞게 변할 수 있을까.그렇다면…역시 정민수가 옳았다.그녀는 아마 앞으로는 무섭게 홀로 서리라.그동안 그렇게 믿고 사랑하고 의존해왔던 정민수를 철저히 증오하면서….그녀의 정민수에 대한 강한 사랑과 의존심은 돈으로 그 대상이 바뀐 듯했다.돈만이 약 하디 약한 그녀가 앞으로 변함없이 의지할수 있는 유일한 대상일테니까….
채영은 여기까지 단숨에 말해버리고는 불안한 눈으로 민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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