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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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6)방파제로 기어오른 사람들이 하나씩 바다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사이,옆에 와 선 한씨가 말했다.
『이보게,뒷일을 부탁하네.』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염려하지 마시고,가세요.』 둘의 손이 더듬거리며 어둠 속에서 서로를 움켜쥐었다.한씨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세 불리하거든 내 말대로 하게나.나가사키로 들어가기 전에 이틀은 기다릴 테니까.』 이 사람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여기 남아서 겪어야 할 고초가 어떨지 모르지 않는다.그러나 어쩔 것인가.생각은 같아도 가는 길이 이렇게 틀리다는 데 마음이가 엉키면서 한씨가 덥석 태수를 끌어안았다.
『그래야 하네.뭐든 자네는 아는 게 없어.다 나한테로 미뤄야하네.』 『그럴 사이나 있을까 모르지요.』 『약해지지 말고.』『네,그럼 가시지요.』 팔을 푼 한씨가 두어 걸음 물러서는가 하자 풀쩍 몸을 돌렸다.방파제 위로 올라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태수는 사무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언제 다시 저들을 만나랴.사라져가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며 태수는 등을 구부리고 서 있었다 .파도소리 뿐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태수는 마음 속으로 물속을 헤엄쳐 나갈 그들을 그려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굳게 입을 다문 채 태수가 몸을 돌렸다. 이제 바다로 들어섰으리라.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파제 위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다가 태수는 주먹을 움켜쥐며 돌아섰다. 너 혼자 떠나다니.길남이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이를 갈며 혼자 떠난 그를 원망했던 태수였다.혼자 가는 거야 쉽다.죽어도 제 목숨 하나다.그럴 거였으면 버얼써 떠났다.
길남을 생각하며 하곤 했던 생각을 되씹으며 태수는 발 길을 돌렸다.더 오래 두고 보지는 않을 거다.내일이면 사무소에서도 무슨 조치가 내리겠지.결국은 뻔한 거지.이마빼기가 깨지는 싸움이 붙겠지.
풀들이 밤바람에 흔들리는 공터를 태수는 발소리를 숨길 것도 없이 저벅거리면서 걸었다.경비원들 동태도 살필 겸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을 잡자는 생각에서 그는 길을 바꿔 일본인들의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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