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엔高와세계화전략>1.엔高정책 있나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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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는 지난 세번의 엔고를 헛되이 흘려보내고 이제 또다시 경제의 구조조정이니,부품산업의 육성이니 하는 「원론(原論)」수준의 정책 마련에 부산한 형편이다.엔고는 주어지는 환경일 뿐 엔고를 활용하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헛되이 흘려보낸 엔고의 교훈은 무엇이며,마지막일지 모를 이번 엔고를 활용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네차례의 특집 기획을 통해 모색해본다. [편집자註] 우리는 그동안 엔高의 단물을 빼먹는 데 급급했지 정부나 기업.근로자 모두 별로 한 일이 없다.단기적 수출 실적이나 경상수지 흑자,그에 따른 고성장에 집착하며 그런 것이 다 우리가 정책을 잘 쓰고 상품을 잘 만든 결과인양 치부하고 넘어갔다.
엔高 상황은 75~78년,85~88년에 이어 93년초부터 다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엔高 대응 자세는 70~80년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일본 기계와 부품을 들여와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열을올리다가 부품 하나만 고장나도 일본에 손을 벌리는 체질이 아직도 여전한 것이다.
기계를 비롯,핵심 부품이나 소재의 국산화를 진전시켜 장기적으로 채산성을 높이는데 힘을 쏟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93년초부터 맞고 있는 최근의 超엔고 상황 아래서의가격 경쟁력이란 과실(果實)이 그전만큼 달지 못하다.
질은 좀 떨어질 지 몰라도 값이 훨씬 싼 중국.동남아등 후발개도국의 상품에 한국 상품이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가 85~88년 엔高 혜택을 봤던 신발이나 섬유등 경공업이다.
당시 이들 산업은 경쟁력이 살아난 것이라기 보다 일시적으로 구조 조정이 지연된 것에 불과했다.
최근의 엔고 상황에서도 이 두 업종이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한채 중화학 공업과 경공업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그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우리나라 산업에서 중화학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계.전기.전자등 핵심 업종의 對일본 수입의존도가 너무 높다.
지난해 기계류.부품.소재의 對日 무역수지 적자는 1백38억달러에 이르러 나머지 상품 수출.입을 계산한 전체 무역수지 적자(1백18억6천7백만달러)보다 20억달러나 많았다.
물론 우리가 전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86년부터 기계류.부품.소재 국산화 5개년 계획(1차 86~91년,2차 92~96년)을 추진하고 있다.
86~94년 사이 4천87개 업체에 7천66억원을 지원해 81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낸 것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체 수입 가운데 기계류와 전기.전자.수송장비.정밀기기등 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여전히 40%대에 가깝다.
한 나라의 산업구조가 고도화하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기계와 장비를 스스로 만들어 쓰기 때문에 자본재의 수입 비중이 낮아져야마땅하다.
그러나 기계.부품류의 국산화율이 낮은 우리는 자본재의 수입 비중이 93년 36.5%에서 지난해 39.5%로 도리어 높아졌다. 이웃 일본이나 대만은 전체 수입액 가운데 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6%대다.
문민 정부 들어서도 정부의 대응은 종전의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우연히 새 정부 출범 무렵부터 다가온 新엔고를 구조 조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신경제 1백일 계획등 부양성 정책에 초점이 맞춰 졌고 뒤늦게 세계화에 눈을 떴다.
올들어 특히 3월부터 超엔고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는 뒤늦게 대응책 마련에 부산하다.
하지만 엔高 대책은 경제부처끼리만 머리를 맞댄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이번 엔고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최우선 목표를 경제에 두고 노사가 합심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엔고 활용엔 왕도(王道)가 없다.
평소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국가 경영의 중심을 잡고 모두들 국가 경쟁력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 꾸준히 힘을 쏟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梁在燦기자 정부의 엔高 대책 마련 작업은 3월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월13일 민자당과 고위당정협의도 가졌으며,벌써 한달 보름째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게 재정경제원과 통상산업부 실무자들의 고민이다.
통산부는 일단 자본재 산업 육성과 외국인,특히 일본 기업의 투자유치가 양대 축인 방안을 만들고 있다.일본의 부품산업을 끌어오기 위해 韓日모델 중소기업 협력사업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들어있다.
그러나 결국 상당수 방안이 세금을 깎아주거나 자금지원을 하자는 것이어서 재경원 내부에서도 세제실이나 금융실은 달갑지않다는반응이다.
재경원 고위 관계자는 『이런 단편적인 것 말고 좀더 중.장기적인 차원의 산업구조 조정 방안이 없느냐』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경원에서도 묘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엔高 대책을 마련중인 한 실무자는 전반적인 규제완화 추세속에서 일일이 현장지도를 나갈 수도 없으며,과거와 같은 여러가지 대책을 다시 한번 정리.반복하는 차원의 대책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대책의 핵심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정책자금을 집중시키는등 그전과 다른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압축되고 있다. 또 말로만 일본 기업의 투자 유치를 강조해선 안되고,일본 기업이 자본이나 물품을 들여오고 갖고 나가는데 불편이 없는자유무역지대를 만드는등 근본적인 문제를 고쳐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梁在燦.李鎔宅기자〉 엔高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세가지가 있다.엔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잘못된 고정 관념을 지금이라도 떨쳐버려야만 우리는 비로소 엔高를 국가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엔高는 일본에 불리하다.
엔高 때문에 일본경제가 주저 앉지는 않는다.엔高에 대한 일본기업의 적응력은 뛰어나다.이번에도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분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엔高에 맞는 「고급 경제」로 탈바꿈하고 경영을 효율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일본 국민 들의 궁한 생활도 해소된다.돈만 많고 생활은 궁핍한 나라를 돈도 많고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자는 「생활 대국(大國)」이 가시화될 것이다.결론은 엔高가 일본에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엔高는 우리에게 이롭다.
엔高가 계속되면 우리 상품이 일본 것보다 싸지는 셈이니 수출이 늘어난다.
다만 뿌리깊은 對日수입의존이 없다는 전제아래서다.일본에서 부품과 기계를 들여와야 하는 처지에선 수출을 늘려본들 일본만 장사시켜주는 격이 된다.
또 엔高는 우리의 산업구조를 저급한 수준에 묶어둘 수 있다.
일본 것 보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수출이 늘면 고급상품을 만들 필요를 덜 느끼기 때문이다.결론은 스스로의 노력없이는 엔高도 「지나가는 버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의 對韓 진출은 나쁘다.
우리는 일본기업의 對韓진출을 경제적 침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있다. 그러나 엔高 때문에 국내 생산이 어렵게 된 일본은 우리에게 부품.기계산업등을 옮겨오려 하고 있다.
결론은 엔高때 일본 기업을 유치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것이다. 金廷洙 本社전문위원.經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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