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굽는 불판 유해논란, 소비자들은 ‘헷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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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시중 일부 고기집에서 불판을 닦을 때 규격에서 벗어나는 세제를 사용하거나 세제를 사용해 닦은 후 세척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방영,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소비자단체나 환경단체들은 계면활성제의 유해성을 지적하고 있는 반면 내과의나 식품독성학연구실, 국립독성연구소 등은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어서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는 것.

여기에 당국은 방영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관련 표준규격이나 관리기준조차 없어 알맹이 없는 단속이 이어지는데다 관리·감독해야 할 인력조차 부족,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 엇갈리는 주장, "누가 옳은 거야?"

불판 세제과 관련해 문제점으로 지적된 성분인 계면활성제는 물에 녹으면서 오물 등의 표면에 흡착해 표면장력을 현저하게 저하시켜 세척을 쉽게 만들어 주는 물질로 비누나 샴푸, 세제 등에서 널리 쓰인다.

서울대학교 식품독성학 연구실 관계자는 “계면활성제의 화학성분 자체가 워낙 여러 가지라서 화학성분을 살펴보고 연구를 해봐야 알겠지만 물에 잘 씻기는 성질이 있어 흐르는 물에 충분히 헹구기만 해도 인체에 특별한 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 독성연구소의 한상대 연구원 또한 “연구 결과 계면활성제로 인한 피해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기준 없는 이런 결과 발표들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서울대 보건환경대학원 관계자는 피부에 흡수되면 습진이나 만성 간장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 대표적인 환경오염 물질로 단시간은 몰라도 장기간 섭취할 경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환경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합성세제에 포함되어 있는 석유화학계 계면활성제를 장기간 사용할 경우 신체 신경기능 장애 및 면역력 저하로 인한 아토피, 천식, 비염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2001년 발표된 바 있어 안심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알맹이 없는 단속만 이어져

계면활성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여전히 관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장기복용 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계면활성제가 불판에서 다량 발견됐다는 지적에도 정작 단속기관들은 육안으로 확인하는 등 형식적인 검사만 한 것으로 확인, 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큰 문제는 기준없는 단속. 실제로 담당 공무원은 식약청에서 특별점검 지시가 내려와 실태 조사를 통해 세제 종류와 석쇠 사용 여부, 불판 재질, 헹굼 횟수 등을 육안으로만 점검했을 뿐 수거해 잔류 세제량을 측정하는 등 정밀하고 과학적인 조사를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처벌 또한 솜방망이에 불과해서 규격 외 세제를 쓰거나 세척을 제대로 하지 않아 단속이 된다고 해도 과태료 2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업주 입장에서는 세척 인력을 따로 쓰는 것보다 과태료를 내는 게 더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단속기관인 지자체에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 강남구의 경우 음식업소가 4200개인데 단속 인력은 겨우 2명, 서초구의 경우 업소는 5400개인데 단속 인력은 6명이었다. 이 인력으로 관할 식당을 모두 조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

여기에 불판 위생에 대한 책임부서가 명확치 않은 것도 효과적인 단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제품은 복지부, 위생관리는 식약청, 그리고 실제 단속은 각 지자체로 분산돼 있어 불판을 비롯한 식기들의 위생 전담부서가 없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다.

한편 전문가들은 세척시 계면활성제를 피하려면 세제 원액을 물에 녹인 후 수세미에 묻혀 사용하고 물에 충분히 헹구며, 식기는 엎어서 보관하면 계면활성제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위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불판 사용 식당의 경우 이같은 대책 마련도 불가능해 관계기관들의 책임감 있는 단속이 시급한 상황이다.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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