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의Food&Med] 포도주, 걱정 말고 드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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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불편한 진실’이지만 김치에도 발암 물질이 들어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2A 등급(인체 발암 가능성이 유력한) 발암물질로 분류한 니트로스아민과 에틸 카바메이트다. 그러나 김치를 발암식품으로 보진 않는다. 발암물질의 양이 무시해도 될 만큼 적기 때문이다. 김치에 풍부한 항암·항산화 성분은 극미량 발암물질의 해악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요즘 웰빙주로 인기 높은 포도주가 난데없이 수난을 겪고 있다. 에틸 카바메이트 탓이다. 에틸 카바메이트는 별칭인 우레탄이 우리 귀에 더 익숙하다. 효모의 영양원으로 공급하는 요소 등 질소산화물이 발효되면서 자연 발생한다. 포도주·청주·위스키 등 발효주와 요구르트·치즈·김치·간장 등 발효식품에서 검출되는 것은 이래서다. 에틸 카바메이트는 가능한 한 적게 먹는 게 최선이나 소비자 입장에선 뾰족한 자구책이 없다. 장기 보관 시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정도다.

그러나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근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양이 극미량이다. ppb(10억분의 1) 단위로 들어 있다.

둘째, 검출되는 양의 대부분이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돼 빠져 나간다. 영국 식품표준청(FSA)의 2004년 발표에 따르면 음주 뒤 24시간 이내에 섭취한 에틸 카바메이트의 90∼95%가 간에서 무해한 물질로 분해된다. 분해되지 않은 것도 대부분 소변과 함께 배출된다.

셋째, 포도주엔 항암·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쿼세틴·에피카테킨·레스베라트롤 등)이 풍부하다. 이들은 에틸 카바메이트를 무독화하기에 충분하다.

역학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6년 10월 미국 대학 위장관학회 학술대회에선 포도주 섭취가 대장 폴립(용종)의 발생률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평균 나이가 50대 후반인 1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연구에서 적포도주 애호가에게 폴립 등 대장에 이상 증식이 생길 위험은 3%로 나타났다. 백포도주 애호가(9%)·완전 금주자(10%)에 비해 확실히 낮았다. 레스베라트롤 덕분으로 추정됐다. 적포도주가 백포도주에 비해 월등한 결과를 보인 것은 포도주의 항암 성분이 껍질 부위에 몰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지난해 가을 국내에서 에틸 카바메이트가 처음 이슈화됐다. 수입 포도주에 ‘상당량’ 들어 있다는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이 계기였다. 당시엔 허용기준이 없어 막연하게 ‘과량’을 문제 삼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서둘러 허용기준(30ppb)을 정한 뒤 이를 입안예고했다. 그러나 이 기준이 포도주 애호가의 건강에 실질적인 도움 없이 모두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만 가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에틸 카바메이트는 유통·보관 중에도 온도 변화에 따라 검출량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허용기준을 모든 발효식품에 확대할 경우 발효식품 전반에 대한 불신을 소비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청국장·김치·요구르트 등 발효식품은 국민 건강을 위해 적극 권장해야 할 식품이기 때문이다.

박태균 식품 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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